제42집: 복귀의 행로를 찾아서 1971년 04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5 Search Speeches

"기쁨의 자리, 슬""의 자리"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 중에 최고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이요, 우리의 의식기관, 혹은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전체의 주체자요, 중심적인 분입니다. 그를 대함으로 말미암아 만족이 시작되는 것이요, 행복의 요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외의 일체는 우리 인간 앞에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 앞에는 부모가 전체의 기쁨을 대신하고 행복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앞에 하나님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중심은 물론이요, 생명의 중심도 물론이요, 소망의 중심도 하나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쳐 나가고 움직이고 변하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체의 행동이 인간의 행동으로 상속되어야 하고 일체의 심정도 인간의 심정으로 상속되어야 합니다. 그 상속된 심정으로 말미암아 자란 남성과 여성이 합해서 부부의 정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류의 선조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길리움을 받아 타락으로 인한 슬픔의 한날을 맞지 않고, 기쁨의 자리에서 성숙되어 가지고 소망의 한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권내에서 축복을 받았더라면, 다시 말해서 결혼식을 올렸더라면 그 부부는 악한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선한 부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기쁨은 생리적인 기쁨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은 환희 가운데 맞이하는 기쁨이었을 것이며, 그날은 우리 인류시조에게 있어서는 행복된 출발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날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는 제일 기쁜 웃음을 웃을 수 있었을 날이요, 제일 기뻐할 수 있는 날이요, 제일 자랑할 수 있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 들여 지어서 적자와 같이 키워 나오던 그들이 기뻐했을 그날은 부모와 같은 입장이 있는 하나님께도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은 인간의 기쁜 날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기쁜 날이요, 그 기쁨 가운데 이루어지는 부부의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말미암아 연결되고, 기쁨으로 말미암아 화합하고, 기쁨으로 말미암아 출발을 보아야 할 인류의 조상이 도리어 슬픔과 더불어 저주의 한 기원을 마련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품에서 떠난 것도 물론 슬픔이로되 그보다도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추방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슬픈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어떠한 개인의 노력으로도 되찾을 수 없는 슬프고도 원통한 타락권내에 떨어진 것이 인류의 비극의 동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부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인류의 비참상인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그러한 부부로서 엮어진 인연 가운데서 태어난 아들딸을 대하게 될 때, 기쁨의 얼굴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과는 상극된 입장에서 타락의 한을 품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입장에서 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것이 아담 가정의 맏아들인 가인이요, 둘째 아들 아벨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극복할 수 있어야 되고, 또 부모의 어려움까지 극복하지 않고서는 기쁨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가 얼마나 비참한 자리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