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집: 세계여성시대 해방선포 1992년 05월 10일, 한국 본부교회 Page #332 Search Speeches

상대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 것이 창조의 기원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지금 이렇게 욕을 하지만 밥 먹으면 다 잊어버려요.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님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과 같은 전통적 삶의 기원에서부터 생활적 기원까지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천리입니다.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결혼하기 전에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랐지요? 그거 안 바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러면 얼마만큼 잘나기를 바라요? 백 배 잘나면 좋겠어요, 천 배 잘나면 좋겠어요? 무한입니다. 그래, 하나님이 백만큼 투입하면 백만한 상대밖에 생겨나지 않아요. 그러므로 백 배, 천 배, 만 배 이상 되기를 원할수록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길을 택하지 않으면 보다 참된 가치의 상대권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이론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자기 상대는 자기보다 몇천 배 훌륭하기를 바라지요? 그게 어디서 온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마음일 때 하나님 자신보다 천배 만배 훌륭하기를 바라는 데서 창조의 기원이 설정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커요? 우주를 소유하고 남을 수 있는 기원이 거기서부터 발발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이론적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도는 것입니다.

완전한 저기압이 되면, 완전히 투입해서 무로 돌아가게 되면 막대한 우주의 힘이, 진공이, 끌어당기는 우주의 힘이 최고 기압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고기압으로 버티고 있던 그 모든 고기압권이 진공이 생기게 되면 진공권을 향해서 그리로 가는 거예요. 그래, 진공이 생기게 되면 진공권을 향해서 고기압이 저기압에 끌려 가요, 저기압이 고기압에 끌려 가요? 어떤 거예요? 고기압이 저기압으로 끌려 가는 것입니다. 완전한 무에 투입해 가지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게 될 때, 높은 데에 있는 것은 흘러 내리게 마련입니다. 순환운동은 거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위하면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기 전에 태풍권이 불어오기 때문에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위하고 희생해서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인간의 진공상태의 사랑권을 중심삼고 잃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태풍권 고기압 사랑이 태풍과 같이 몰아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30대 청년인 예수가 반역자로 몰려 죽은 그것이, 2차대전 이후에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세계통일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나, 문총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을 받고 쫓겨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번에 저기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제일 밑창에 가는 거예요.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부모같이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울타리가 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나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적개심이 없습니다. 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적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면 이원론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아바 아바지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거기에 예수 자신의 개념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죽어 가는 아들을 찾아나선 어버이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대등한 자리에 서려니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희생하고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자기 뜻을 잊어버린 가운데 상대를 위해서 투입하고 또 투입한 것입니다. 그 아들이 되려니 `나는 당신 앞에 내 뜻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뜻에 의한 상대자일 뿐입니다. 그것이 내 생애의 목표요, 죽어서 남길 수 있는 터전은 그것밖에 없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최고는 하나님과 같이하며, 최하는 자기 가슴에 창을 찌르는 그 로마병정을 보면서 죽는 순간에도 `저들이 행하는 죄를 저들이 모르니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현재 기독교와 같은 자리에 섰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저 자를 심판하소서.' 할 텐데, 예수는 안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기독교는 전부 다 멸망받는다는 논리가 여기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왜 그랬어요? 하나님이 죄악된 인간세계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로서 죽음을 넘어서라도 그 길을 남겨야 되겠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원수에게 복을 빌어 줌으로 말미암아 진공상태에서 하나님이 발동해 가지고 그것을 평준 수준으로 세계 최상의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그런 섭리적 기반 위에 기독교 국가를 중심삼고 2차대전 직후에 세계통일권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기독교가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 믿고 천당 가겠다고 하는데, 그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나라를 살려야 돼요. 세계를 위해서 자기가 거지떼의 대행렬이 되고 집시의 무리와 같이 되어 가지고, 가정과 민족을 끌고 다니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한 기독교 무리가 돼야 된다구요. 그래서 기독교를 쫓아낸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와 같이 나가 가지고 핍박받고 죽음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발전한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신교니 구교니 투쟁하다가 미국에 도망가서 신교독립국가를 세웠지요? 이런 원칙에서 역사적 흐름의 모든 것이 이치에 맞게 발전해 나오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이 모르기 때문에, 신음과 도탄 중에 고민하면서 악마의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하는 망국지종의 세계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