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305 Search Speeches

재림주의 자격과 그 사명

그러면 여러분이 이러한 사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구보다 크고 엄청난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비참한 통곡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붙들고 같이 몸부림치면서 통곡할 수 있는 자리를 갖추지 않으면 아담이 하나님께 박은 한의 못을 아담과 더불어 뺄 수 없는 것이요, 아벨이 못을 박았으면 그 아벨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통곡할 수 있어야 그 못을 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가 원칙이라 할진대는 아벨의 입장에 서서 가인을 부둥켜 안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같이 눈물 흘리지 않으면 복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이 가야 할 복귀의 길입니다.

노아가 실패한 것을 해원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노아 대신 하늘의 전체적인 책임을 진 아벨의 입장이 되어 실수한 노아를 가인적 자리에 세워 놓고 그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붙들고 하소연 할 수 있는 한때를 갖지 않고는 노아의 슬픔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실수한 함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이면 아브라함이 실수한 한 때를 중심삼고 아브라함을 붙들고 통곡하며 회개할 수 있는 한 길을 모색하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세면 모세가 실패한 것을 중심삼고 아벨적인 입장에서 모세를 붙들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제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복귀의 사연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세례 요한이면 세례 요한, 예수면 예수가 실패했던 내용을 중심삼고 그들 대신자 입장에 서서 그들을 붙들고 통곡하며 하늘의 사조를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이 나오지 않고는 지금까지 하나님 가슴속에 못 박혀 있던 서글픔을 뽑아 드릴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기독교단의 희생한 무리들을 붙들고 통곡하면서 회개하여 그 사연을 통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지 않고는 기독교를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오셔야 할 분이 재림주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담과 더불어, 아벨과 더불어,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더불어, 나아가 예수와 더불어, 또한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에 왔다가 희생한 수많은 순교의 역사와 더불어 눈물 흘리게 될 때, 그 눈물은 타락의 눈물이 아니라 희망의 눈물인 것입니다. 이 희망의 눈물로써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를 붙들고 대신 울어 줄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복귀의 사연은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더듬어 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있게 된 배후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한때를 잃어버렸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 걸어간 예수님의 일생은 수난의 길이었습니다. 역사의 전체적인 한때를 몽땅 대신할 수 있는 생애를 살아야 했던 것이 오신 그분의 사명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이러한 사명을 가진 분은 지금까지 실수하였던 하늘땅의 모든 사연을 얽어매어 해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과 예수님 앞에서 지금까지의 종교 전체를 대신하여 판가리를 지어 가지고 승리의 결정권을 갖고 와야만 지상에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의 소망이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 아담의 실체이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제 3 아담은 하나님의 내정적인 슬픈 천운을 품고 오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 두 세계의 마음을 몽땅 가져서 그 중 서글픈 마음을 뽑아 버리고 기쁜 마음을 재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의 내성적인 표현이라면,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을 바라보시던 한스러운 지금까지의 역사를 전부 잊으시고 다시 아담을 창조할 수 있는 소망의 한때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은 두 세계, 즉 슬픈 세계와 소망의 세계의 사명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30억의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오시는 주님 앞에 목숨을 내놓고 그 분과 같은 운명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오시는 주님은 역대의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땅의 인연을 모두 갖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눈물로써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갖추고 오시고, 천상의 인연이 아닌 지상의 인연을 갖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이상 슬퍼할 수 있은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슬픔이 몽땅 재림할 수 있는 곳은 그분이 계시는 지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내성적인 뜻을 몽땅 성취할 곳도 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슬픔과 기쁨의 두 세계에 있어서 사명을 다해야 되고, 영계와의 싸움에 있어서 지금까지 역사를 대신할 수 없었던 입장에서 이제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 현실과의 싸움에서 망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자리는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복귀의 노정을 담당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이요,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스승에게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