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집: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 1964년 09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1 Search Speeches

가인 아벨이 일체가 되어야 민족적인 사명의 기준을 세울 수 있어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종적 세계의 인연으로서 여기에 집착하여 벌어진 것을 어차피 가인 아벨…. 영적 기준에 있어서 지상에서 청산할 수 있는 고개를 거쳐 가지고 탕감해서, 여기에서 국가적인 승리를 예수의 한 몸을 중심삼고 해 가지고 비로소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편안한 자리에 동할 수 있는 예수가 되었더라면, 유대 나라 어디에 가든지 그를 지지하고, 그를 모실 수 있고, 그가 어디 가든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환영할 수 있는 그런 천지의 예수가 되었더라면…. 예수의 몸과 마음이, 예수의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이 상충됐다 이거예요.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으니 여기에 그 싸움이 남아져 있는 겁니다. 이 싸움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적인 싸움터가 다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면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을 위하고, 땅의 실체를 중심삼고 하나의 이념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이념을 총합한 실체에 있어서 내적 사정과 외적 사정이 일치되어서 마음대로, 동서사방 어디든지 움직여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끔, 움직여 가지고 전체적인 목적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게 되면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점점점점 커지는 핍박의 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주권, 두 주권, 세 주권을 거치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핍박이 크고, 어려움이 큰 거기에서 점점점….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민족적인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기준을 세울 것이냐? 이 땅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지금은 예수가 봉착하던 그 시대의 사명이 이루어진 그런 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적인 입장이고 아벨적인 입장이니, 아벨적인 입장과 가인적인 입장이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일체가 되어야 돼요, 일체가. 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 인연을 동반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대책을 취해 왔기 때문에 금후의 중요한 문제, 하늘이 찾고 있는 개인, 하늘이 찾고 있는 가정, 하늘이 찾고 있는 종족ㆍ민족ㆍ국가….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하늘이 6천 년 동안 찾아오던 그 개인이 누구며, 그 가정이 누구며, 그 종족이 누구며, 그 민족, 국가, 그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것을 좌우하는 책임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선 오늘 통일교회의 운명,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의 운명이 아니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러분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은 어느때에 했느냐? 못 했습니다. 못 했으니 대표적으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이 사명을 해 나가는, 이 사명적인 터전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 가지고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그런 터전에 임해야 할 것이…. (녹음이 잠시 끊김) 개인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가정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가정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종족적인 사명을 할 때는 종족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국가적인 사명을 할 때는 국가적인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 행사를 중심삼고, 1960년부터 1963년까지 우리가 행사한 것이 그 순서가 어떠한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을 대표한, 개인 그 자체를 중심삼은 행사가 아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종족을 대표할 종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를 일깨울 수 있는 국가적인 대표들을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내적인 인연의 중심과 기리까에(きりかえ;바꿔치다)해서 연결시켜 나오는 거룩한 싸움이요, 그런 거룩한 의식이었다는 것을 진정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