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행복한 무리들 1960년 05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0 Search Speeches

인간이 찾아야 할 참부모

성경의 중심은 예수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타락한 이후의 기록이예요. 예수가 중심이 된 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가 중심이 아닙니다. 아담이 중심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아십시오. 타락했기 때문에 구주니 기도니 종교니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아느니 모르느니 무신론이니 유신론이니 하는 논란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못나고 미흡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피조물을 대해 '야!' 하면 그 피조물이 '예!' 할 수 있게끔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슨 하나님입니까?

여러분! 종교는 넘어서야 할 시기가 옵니다. 세계를 넘어서야 할 시기가 옵니다. 더 나아가서는 역사관, 사회관과 자기 위주의 심정관을 넘어서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딸만 아들딸입니까? 내 가정만 가정입니까? 내 나라만 나라입니까? 그렇다고 해보세요, 어떻게 되는가.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 보세요.

여러분, 때는 이미 세계적인 이념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주의시대, 이 때는 내 생활 감정을 넘어서고, 내 인생관을 넘어서고,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을 넘어서 천주관(天宙觀)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야 할 때 입니다. 아무리 효자라 해도 부모가 거느리는 가정이나 환경을 잘 수습하지 못하고 싸움만 하면서 '아버지' 하게 되면 그 부모가 좋아하겠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충성된 자리에 들어가서, 심정적인 기준을 통과한 후 '아버지!' 해야 하나님께서 '오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인간으로서 이 땅의 어떠한 사랑, 어떠한 이념, 어떠한 그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라 불러도 하나님은 '오냐!'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심판받아야 합니다.

끝날이 다가오는 이때, 참다운 행복을 바라고 나가는 이때에 우리는 오늘의 것을 향하여 나갈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것을 넘어 내일의 것을 향하여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동시에 내일의 것에 대한 가치관이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심중 깊이 뿌리박힌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소망의 사람입니다. 역사와 더불어 이 땅이 망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빼내어 명령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그 무엇을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이때는 바야흐로 생사의 결판을 지으려 하는 때입니다. 비록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찾을 것은 찾고 가질 것은 가져야 되겠습니다. 자랑할 것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찾을 것을 찾았습니까? 가질 것을 가졌습니까? 자랑할 것을 가졌습니까? 못 가졌으니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이예요.

머무르고 있는 오늘의 환경에서 행복의 터전을 꿈꾸어 보세요. '아이고 나 살려주오' 할 때가 옵니다. 보따리 싸가지고 죽자 살자 하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요즈음 여러분 잘 보잖아요?

하늘은 우리를 향하여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역사의 복판에 서서 '너희들은 나에게 오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개의 국가나 민족권내로 들어오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의 사람에게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던 그 인연과 관계를 아는 심정의 주인공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도(道)가 있지만, 심정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의 도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도가 기필코 나타나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안 계신 것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인 윤리와 도덕을 가르쳐 주는 도도 있고, 무한한 영계를 가르쳐 주는 도도 있지만, 윤리도덕과 무형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합하여 하나의 심정의 골자 위에 올려 놓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를 찾아보니 기독교더란 말입니다. 기독교는 심정의 종교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갖춘 참부모를 잃어버렸는데, 기독교는 그 참부모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종교입니다.

참부모가 깨어지니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참부부가 안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부부를 이뤄 알뜰살뜰하게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부부예요? 천만부당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부부들이 주님 오실 때에는 다 갈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있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체험이 있는 사람은 대번에 압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재미있게 살던 부부일지라도 남편 갈 곳이 따로 있고 부인 갈 곳이 따로 있습니다. 원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에 그렇습니다. 만약 이런 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이념이라면 항의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축복받은 참다운 부부로서 땅에서부터 영원한 세계까지 영원히 당신을 모셔주기를 바라고 계신데,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부모가 이 땅 위에 나오지 않았고,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공인받은 부부가 이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남 일녀를 지어놓으시고 이렇게 살라고 했겠어요?

오늘날 도의 기준은 독신생활입니다. 왜 독신생활인지 알아요? 아직까지 원칙적인 기준에 도달한 주인공이 나타나 참부모로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에 의한 참부모가 아직까지 새워지지 않았는데 그 후손될 자들이 가정을 이루어 살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독신생활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