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혈통의 전환 1970년 10월 13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64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사모해야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하고 모든 사랑의 근원이라 생각하며, 그 안에 모두 들어가고 싶어한다. 또, 그와 일체가 되고 싶어한다. '아, 그립다'하며 목마르게 그리워하는 경지에 서야만 예수님과 자기는 하나인 것이다. 자기도 예수님과 한몸인 것이다. 예수님이 슬퍼지면 자신도 슬퍼진다. 그 골육 속에 있는 아이의 씨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남자의 감정의 모든 것은 그 씨에 영향을 미친다. 기쁠 때는 기쁜 영향을 미친다. 슬플 때는 슬픈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예수님과 이어지는 아이의 씨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남자이시다. 사실은 타락하지 않는 원래의 아담인 것이다. 결국은 육적이면서도 영적으로 아버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길은 전연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골수에까지 들어갔다고 하는, 예수님을 목마르게 그리워하여 예수님의 애정과 맞닿는 그러한 것을 체휼하게 하는 오직 하나의 가르침인 것이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그리워하고 맞이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신랑으로 맞이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중의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 데 있다. 하나는 그 골육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씨가 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했다고 하는 조건도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신부의 입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 속에 들어 있는 씨로, 아담 속으로 모두 되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聖靈)은 해와의 신이다. 이것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낳을 수는 없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에 아담 속으로 빨리 돌아가게 하는 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용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모두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애기 씨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이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런 것은 알지도 못한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예수님을 무조건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라고 한다.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 수월하니까 그런 말을 한다. 잘 모르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치도 않은 일이다. 원리적으로 보아 이렇게 되지 않고서는 완전 복귀는 안 된다. 이론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은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라고 했다 해서 예수님 앞에 모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골육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역사상에서 섭리하시는 것이 쉬운 일인가 어떤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 중간에는 수많은 사탄권, 원수권이 가로막고 있다. 하나님이 가로막고 있는 이 사탄권을 돌파하는 것은 단번에는 안 된다. 그래서 수많은 싸움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나왔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의 골육 속에까지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다 들어간다고 한다면 무엇이 들어갈 것인가? 육체는 들어가지 못한다. 심정밖에는 안 된다. 사랑밖에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이외에는 인연을 맺을 아무것도 없다. 진리도 아니고 정의도 아닌 것이다. 생명이 있기에 앞서 사랑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난다. 사랑 없이는 그것을 맺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역사도 뛰어넘을 수 있다. 거리나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분명히 가르쳐 주느냐 하면, 복귀의 노정이 이렇게 되어있기 때문이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심정적 문제를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제 일보를 내디디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혈통적인 전환기가 아니라 생애의 전환기에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와 같이 분명한 내용의 기반을 닦아 나가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한다. '이것봐, 어디에서 이전해 왔어? ' '어디에서 출발했어? '라고 하면, '타락하지 않은 에덴 동산, 하나님의 품에서'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무엇이 그러냐고 물었을 경우, 여기가 이렇지 않느냐고 하면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로서는 설 길이 없지만, 이러이러한 분이 싸인해 주신 것을 받았으므로 그렇다고 해야 한다.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세웠으나, 그 소유권은 종이 한 장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우리가 받았으니 사탄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