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1962년 02월 04일, 한국 이리교회 Page #290 Search Speeches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별되어 있" 현세계

여러분들, 여기에 왜 왔어요?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이러한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어느 한 때에 이것을 거두어서 가려야 합니다. 안 가리면 안 되겠다 이겁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는 다면 하나님이 계시면 하늘 앞에 호소를 해서라도 가려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이렇게 해서 한번 추려 가지고 못쓸 것은 잘라 버리든가 해야 됩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해야 돼요. 그러한 책임을 짊어진 우주사적인 인격자, 인물이 와야 되는 겁니다. 그러한 사람이 못 나오거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신이 해라 이거예요.

오늘날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종교적인 한 면에 있어서의 서광을 남길 수 있는 것, 우리들이 고통당하고 있고 안타깝고 애절한 입장에 있는데서 하나의 이념의 길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것이 종교에 있어서의 메시아 사상인 것입니다. 이걸 볼 때에 역사적인 종교는 필시 그렇게 되어야 되겠으니, 우리가 종교를 떠나서 논리적인 조건을 세워 가지고 비판해 보더라도 그런 때가 와야 할 것은 틀림없으니 반드시 그러한 한 때에 있어서 세계적인 모든 진영을 총수습하여, 이것을 헤아릴 수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정치, 문화, 경제뿐만이 아니라 종교라든가…. 나중에는 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수습하고, 여러분의 심정문제까지도 수습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세계에서는 의식혁명에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강압적으로 `이놈아!' 하고 총끝을 대가리에다 대고….

그러나 춥던 겨울이 지나가고 남에서 북으로 찾아 올라오는 태양빛을 받게 될 때는 그 모든 동산에 얼었던 눈이 녹고 얼음이 녹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이 순리법도에 있어서의 우리 사람 자체도 자기의 길, 방향을 찾아 한 곳을 향해 가게 돼 있습니다.

보라구요. 태양빛이 비춰 오면 방안에 있는 화초를 순의 꼭대기가 먼저 태양 쪽으로 돌아갑니다. 꼭대기가 먼저 돌아가요. 그와 동시에 다말라 빠진 잎사귀라면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진액이 있어 가지고 몇 퍼센트의 생기라도 가진 이파리는 죽어갈망정 그 햇빛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의 시대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에 있어서는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천운이 돌아갑니다. 이 천하를 망하게하기 위한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요, 역사를 근본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한 것이 하늘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을 수습하여 그냥 그대로 연결시키는 겁니다. 가치문제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는 시간적인 가치가 제한성, 시간성을 넘어서 무한한 가치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 할진대…. 거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의 얘기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다시 생각해 봐야됩니다. 이제 여기에 서 가지고 내가 `좋다 나쁘다' 하는 걸 다시 봐야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이 손을 한번 들었다 내리는 것도 결과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이것을 가치문제로 논란을 세워보면 들었다 내리는데 좋은 것을 위해서 들었던 것, 나쁜 것을 위해서 들었던 것 둘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느냐 말이예요. 응? 「없습니다」 한번 벌어진 작용이나 현상이나 행동의 결과는 반드시 선의 결과를 가져오든가 악을 결과를 가져오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사실인 동시에 진리입니다. 이건 삼척동자도 부정 못 합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자구요. `좋다' 할 때,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청년들, 제일 좋은 게 뭐예요? 응? 「…….」 그것도 생각 않고 있어요? 안 되겠구만. 그렇게 말해도 할 수 없다면 말이예요. 이 마음을 가만 보면 좋은 것을 찾고 있는데 말이예요. 제일 좋은 게 뭐냐 할 때, 밤이나 낮이나 좋다 할 수 있는, 천하의 어떠한 존재물을 갖다 주더라도 내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은 세계로. 믿는 사람들은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생각을 가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 같은 동료끼리인데도 누가 가 가지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주먹으로라도 한번 때리면 가만 있겠어요? 기분 나쁘잖아요. 기분 나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들이 쳐갈기든가 자기스스로 대치를 하게끔 돼 있다 이겁니다. 개인적인 위치를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 권한을 우리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콘트롤하는 것, 그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그런 자유 권한을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양심을 찾기 위한 것은 또 뭐냐? 내 양심이 좋고 그다음엔 내가 좋은 동시에 우리 부모도 좋고, 부모가 좋은 동시에 우리 가정이 좋고, 가정이 좋은 동시에 사회도 좋고, 사회가 좋은 동시에 세계도 좋은 그런 뭐가 있어야 될 거 아니예요? 좋기는 좋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면 좋을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의 한정을 알겠어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거예요. 좋은 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있어야 되겠어요? 이젠 거의 다 올라갔지요, 꼭대기까지? 뭐지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좋고, 하늘이 좋고, 땅이 좋고, 그다음엔 세계에서 높은 사람도 좋고 그다음엔 내려가서 백성도 좋고, 그다음엔 상ㆍ중ㆍ하 중에 거지, 그것도 거의 죽어 가지고 `아이고, 나 죽는다' 하고 넘어지는 그 거지도 좋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요?

그 좋은 것에다 입을 대고, 베개도 베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단다면 그 사람은 지금 죽어도 좋을 겁니다. 그런 공상을 한번도 안 해봤어요? 안 해 봤어요? 「…….」 이건 멋진 사나이들이 아니예요. 여자들도 그런 공상도 안 해 봤어요? 안 해 봤어요? […….] 그러니까 지지리 하는 게 여자들이예요.

자,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생각해 보자 말이예요. 생각을 하는 데도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있어요. 행동을 하는 데도 좋은 행동 나쁜 행동이 있고, 먹는 데도 좋은 것 나쁜 것이 있습니다. 가는 데도 좋은 곳 나쁜 곳이 있습니다. 내 오감이나 직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감각에도 좋은 것 나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내 개인이 그러니 이웃집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좋은 집 나쁜 집이 있습니다. 단체를 볼 때도 좋은 단체 나쁜 단체가 있고, 사회를 볼 때도 좋은 사회 나쁜 사회가 있습니다. 국가도 좋은 나라 나쁜 나라가 있고, 주의 사상에도 좋은 주의 나쁜 주의가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도 그렇습니다. 하늘편 사탄편.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으로 봐 가지고 제아무리 종교를 부정하려고 무슨 요술을 부리고 입을 벌려 가지고 큰소리 했댔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인간이 결과적인 가치를 표준하여 선악의 좋고 나쁜 결과의 입장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