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하늘의 용사가 되라 1963년 01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7 Search Speeches

통일하려면 고생을 해야

그러면 그걸 좋은 거 입고, 좋은 데 살고, 좋은 거 먹고 하는 데에서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데리고 헤어 나오고 있지만서도 먹고 입고 사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 싸움의 80퍼센트는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뭐 `어머니가 나보다도 동생에게 먹을 것, 좋은 것을 주는 구나, 흥!' 하는 거예요. 다 그러는 거예요. `아, 우리 상관은 한 직장인데 아무개 녀석한테 잘 해주고, 아무개는 이렇게 됐는데 난 요렇게 되고, 가만 보면 뭐 비슷한데 왜 그 녀석한테는 한푼 더 주고 왜 나한테는…' 한다구요. 전부 다 싸움이 벌어져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못 가겠다 하는 곳이 없어야 돼요. 그래야 통일하지요. 못 하겠다는 것이 없어야 돼요. 죽을 사지를 찾아가야 되게 될 때는 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와서 내가 거느려 가지고 하나되자고, 통일하자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중심삼고 모이지 말래도 모이는 거예요.

요즘에 정당 관계를 가만 보면 말이예요, 새로운 담을 만들어 정치 활동을 시작해서 잘들 모인다구요. 응, 잘 모이는 구나! 생각한다구요. 그거 생각이 많다구요. 알겠어요?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그러려니 이 글자의 내용을 가지고 무난히 어떤 시대나 어떤 환경을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고생하라! 이게 제일 안전 작전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말이예요, 무슨 미국 같은 데에는 하이웨이 같은 진입로가 있는데 사람은 걸어서 못 다니고 차 아니면 못 다니는 그런 길에서 아주 뭐 시속 백 마일 가까이 달려 가지고 그저 무사통과하는 그것보다도 더 안전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가다가 까딱 잘못하면 옥살박살하는 거예요.

그것이 달릴 때 요즘의 인공위성보다 더 빨리, 1초에 3억 미터가는 태양 빛보다도더 빠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이 길을 달리는 데는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여기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예요. 방해도 없고 지장도 없다는 거예요. 방해가 있단다면 그놈이 깨져 나간다구요.

그놈의 대가리는 맨 처음에 들어갈 때는 작은 것 같은데 꽁지는 얼마나 큰지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척 보면 말이지요, 이거 대가리는 아주 뭐 송곳 끄트머리보다 가는데 그놈의 꽁지는 세계가 왈가닥 다 들어가고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그 길이 어떤 길이냐? 여기예요, 여기.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이 길은 선생님도 연구를 해보니까, 알아보니까, 또 기도를 해보니까, 들추고 들추고 해보니까…. 우주적인 발견이라면 그거예요. 그게 천지 통일 쌍화탕이예요. (웃음) 여러분 다방에 가면 쌍화탕 얘기 잘하지요? 웃을 얘기가 아니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매맞아 가지고 민족을 위해 통곡한 것은 지나가지만 지나고 난 후에 그게 벌어지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이 자식아!' 그런 동네가 많다구요, 통일교회 나갔다 들어온 다음에는 동네 싸움이 일어나요. 억울하게 쫓겨나고 억울하게 저기서 매맞고 그런 데에서는 자기들끼리 `이 자식' 하며 자기들끼리 싸움이 일어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이거?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생겼다 이거예요.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있고 꽁지가 있어요.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대령하게 되면 씨알머리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상속자는, 축복의 상속자는 , 더 나아가서 한 말로 말하면 복의 상속자는, 복의 상속자는 이것 안 가지고는 안 됩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결론 나왔지요? 「예」

'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말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 몇 가지만 물어 볼께요. 눈들 가졌으면 생각들 해보라구요, 그거 거짓말인가, 진짜 말인가. 그래, 선생님이 여러분들 시켜 먹어 가지고…. 선생님이 뭐예요? 강도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 신세를 졌지요, 암만 그래야. 알고 보면 신세를 진 거라구요.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살았지.

그래 욕을 먹고도, 알고 난 다음에 잘못 생각하면 속이 편안치 않거든요. 그래 한마디라도, 생각이라도 좋지 않게 하면 편안치 않다는 말이예요. 이러니까 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거 아니예요. 알겠어요? 결론이나오지요? 「예」

복은 어디로부터? 「고생을 하는 데부터」 복을 받은 사람도 주지 못해 고생을 해야 돼요, 더 주고 싶어서. `아이고, 내가 요 부락의 어려운 사람들 다 이렇게 도와줬는데, 아이고 이거 저 집이 또 어려운데 또 주고 싶다. 아, 저 이웃 동네에도 한 줌이라도 주고 싶어!'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자기 친척을 위해서 한몫하고, 자기 마을 위해서 한몫하고, 그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한몫하고, 그 몫을 많이 가지고 나가야 그 후손 망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복받고 살고 싶지요? 복받고 살고 싶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