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집: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1973년 10월 21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리스너 강당 Page #105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지 않을 수 --던 이유

하나님이 볼 때에 세계 도상에 이런 무리는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처음이라고. 부패한 로마 교황청을 그냥 믿을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러한 무리를 찾고 있었는데, 잘만났다고 축복을 안 해줄 수 없다구요.

여러분의 선조들이 고향을 떠나게 된 동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뭐냐 하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나라와 자유의 신앙의 조국을 추구하면서 떠났다는 거예요. 이게 다르다구요. 로마 교황청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 사상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줄 수 없다구요.

여러분은 41명이 남은 메이플라워 호의 무리들을 인디언이 죽이지 않고 환영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디언이 전체를 휩쓸어서 공격했더라면 하나도 안 남았을 것인데 어떻게 되어서 이들을 환영했느냐? 이러한 사실은 기적이라구요. 그때에 만일 인디언들이 그들을 죽여버렸으면 필그림 파더(Pilgrim Fathers)란 말이 안 나온다구요, 안 나온다구요. 이것을 보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이들을 종자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세계적인 기반을 이 나라에 세우고 싶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점점 이민이 불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인디언 지역을 침입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미국 역사에 있어서 이런 놀음이 벌어진 것은 이상하지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말입니다. 인디언이 잘살고 있는 지역, 남의 지역에 함부로 들어온 것은 침략인데 하나님은 왜 인디언들을 전부 다 학살시켜 없애 버리고 이 침략자들을 수호했느냐 이거예요. 이게 문제라구요. 어떻게 축복해 줬느냐 이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하나님은 집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세계적인 자유의 천국을 꿈꾸고 나온 이들이 수난길을 가는 데 있어서 그 길의 몇백 배 몇천 배의 축복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 가지고 그 길을 열어 주려고 하는 입장에 있는데 인디언들이 이것을 막으니 막으라고 그냥 두었다가는 이 뜻을 못 이루겠기에 인디언들을 제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청교도들이 인디언과 싸우게 될 때는 그저 총대를 붙들고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개척하면서도 나무를 붙들고 기도하고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애기를 재우나 여편네를 두고 나가나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 언제나 하나님 앞에 맡기고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일체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부처끼리 농사를 짓고 부처끼리 지낸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거기에서 잘살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개척하면서 산다고, 그렇게 맹세하면서 살았을 거라구요. 자기들이 재미있게 살고 자기 아들딸 거느리고 재미있게 살겠다고 그런 기도를 했을 것 같아요? 추수하여 큰 수확이 있거든 그들은 자기들이 수고해 가지고 거두었다고 꿈에도 생각지 않고 전부 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생각했을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몽땅 들여 가지고 교회를 짓기에 열심을 다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래서 교회 가는 길은 제일 좋은 길로…. 자나 깨나 하나님을 위주로 해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는 데 전심전력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들은 구라파에서 나 가지고 신앙의 자유의 나라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그들은 기필코 구라파 이상의, 구교가 지배하는 구라파 이상의 마을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했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고생이 막심하면 막심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구라파 이상의 하나님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 다음에는 학교를 짓는 놀음을 했다는 거에요. 미래를 위해서 구라파를 능가할 수 있는 아들딸로 교육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거라구요. 그리고 그 다음에야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는 거예요. 자기 집을 지었어도 자기가 살 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친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라구요. 그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학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직장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잘 때에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일체 하나님을 위주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