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하늘이 주관하는 세계 1972년 07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8 Search Speeches

신앙자가 최고의 지조로 삼아야 할 것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하는 하나의 사람, 최초의 사람, '내 이상이 이루어졌다'고 기뻐 가지고 자랑으로 만우주 앞에 선포하면서 '이 기쁨에 동화될지어다. 이 기쁨에 찬양할지어다. 이 기쁨과 더불어 영원할지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 사람 앞에 만물이 주관받게 된다면, 이 세계의 모든 만물도 하나님의 사랑의 전통을 받아 그와 더불어 기쁨을 자극시켜 줄 수 있는 상대적인 물건들이 되는 것이 아니냐? 만물을 바라보는 거기에는 불행의 요건이 있을 수 없을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의 손을 사랑받기 전보다 몇천만 배의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랑을 중심삼고 차원 높은 자리에서 찬양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만물이 되었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로마서 8장 22절 이하에 '만물이 탄식한다'는 바울의 말은 참 당연한 말입니다. 참된 말입니다. 만물의 탄식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도 이런 이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통한 탄식을 지닌 인간이 아니냐? 틀림없습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성신까지도 이 탄식의 권내를 벗어나기를 바라고 지금까지 탄식한다는 것을 볼 때 그 말은 온당한 말입니다.

수많은 종을 거느린 부잣집 주인이 슬픈 아침을 맞고 슬퍼하게 되면 그 종들도 슬픔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일체가 그 권내에 포괄되어 버리고 마는 것을 우리가 상습적인 생활 주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이상적인 기준에서 만물을 지었던 하나님이 그의 이상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 타락이란 원한의 터전을 대하게 될때, 느꼈던 충격과 상심이 어떠했겠느냐? 효자의 한마디 반항의 말은 불효자의 천 마디 반항의 말보다 더 아픈 것이 아니냐? 그렇죠?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불쌍하신 분을 내가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자로서 우리가 최고의 지조로 삼아야 할 문제입니다. 내가 그분에게 사랑을 받기 전에, 사랑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그분을 어떻게 위로할 것이냐? 그분의 사랑의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찾을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는 고찰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