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역사적인 비운의 고개를 우리는 넘자 1958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2 Search Speeches

노아의 비참한 운명

여러분이 다시 구약시대를 회고하면서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간 조상이 비참한 운명을 남긴 이후 1600년 동안 수고하여 수많은 사람 가운데 비로소 찾아진 한사람이었습니다. 이 노아는 어떠한 존재였습니까? 그는 당시의 수많은 인류를 대표하여 하늘의 비운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할 존재였었고, 당시의 인간들이 느끼는 비운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입장에 섰던 노아였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노아, 1600년의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노아는 인간을 위해서나 하늘을 위해서 이 비운의 장벽을 헤치려고 역사 이래 어느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비운의 자리, 밟히고, 조롱받고, 몰리고, 쫓기는 억울한 자리에서 싸워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생애를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생활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가? 탕감의 원칙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인지라 노아의 앞에 1600년을 거쳐 바라던 서글픔의 비운의 사정을 대신한 방주가 나타난 것입니다. 노아가 대해야 했던 방주는 역사적인 비운을 대신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1600년의 비운의 고개를 넘어야 할 사명을 느꼈기 때문에, 책임을 맡기신 하나님과 이 책임을 짊어진 노아가 하나의 심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탕감조건으로서 맡겨 주신 방주라는 것을 노아는 알았기 때문에 120년 동안 모진 비운의 생활과 형극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받은 노아는 그 날부터 있는 정성을 다해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도 아니요, 120년 이라는 기나긴 기간을 참으며 배를 지었는데, 배를 지은 노아의 심정은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짓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후손을 위해 짓는다는 심정도 아니었습니다. 또, 그 당시의 악한 세상을 위해 짓는다는 심정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이 방주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뜻하나를 성취하기 위해서 짓는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슬픔과 1600년 동안 거쳐나온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슬픔을 품고 묵묵히 싸워나온 노아의 모습을 여러분은 회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온 선조들이 슬픈 길을 갔었지만 이런 환경에 처해 있었던 노아는 슬프고 어려운 환경이 몰려오면 몰려올수록 이 어려운 환경을 밀어내고, 밟고 올라서기 위하여 내적으로 몸과 마음의 무한한 투쟁을 거쳤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싸우기를 120년 동안이나 계속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 동정해주지 않는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의 뜻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켜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노아의 심정은 그야말로 1600년 이후 어떤 선조들이 느끼지 못한 슬픔의 심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하늘이 알아주게 되었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한날, 비운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심판의 역사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이처럼 크나큰 섭리의 사명을 짊어지면 짊어질수록 그는 안일하게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기쁘고 평안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몸이 고통을 당했고, 마음의 고통을 당했으며, 죄악의 환경으로부터 핍박을 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느누구 한 사람 편들어주지 않는 어려운 고개를 다 넘고난 후에 하늘이 편들어 줄 수 있었으며, 120년의 핍박과 서러움과 말할 수 없는 비운의 운명을 견디고 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은 친구로서 노아의 위로자로서 노아의 비운의 해원해 주는 책임자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약속의 성취될 때까지의 과정에서는 내적 생활이나 외적 생활이든지 몸둘래야 몸둘 수 없는 이런 비운의 환경에 몸부림 치면서 무자비한 투쟁을 해야 했다는 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됩니다. 내적인 비운의 장벽이 있는가 하면 외적인 비운의 장벽도 있다는 것을 노아 자신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뜻은 외적인 방주를 지음으로써 다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주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의 행사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복귀된 동산에 새로운 가정을 건설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방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외적인 비운의 고개를 넘고난 후에는 내적인 비운의 고개를 남아 있었다는 것을 노아 자신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그날의 실수로 인해 노아가정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