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집: 하나님 앞에 나를 얽어매자 1961년 02월 1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206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할 우리

여러분들을 그런 자리에 내보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복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표본이 되어 아버지의 동반자의 입장에 설 수 있어야 만천하 앞에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틀림없기에 이런 길에 여러분들을 보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생각을 지금까지 못 했거든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 `지금은 얼굴이 아주 비참하니까 내 얼굴 살쪄야 되겠군' 하지요? 요 처녀들. 이건 뭐냐 하면 물바가지예요. `이놈의 손, 이놈의 주먹아, 너는 죽기 전에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 할 때 `나를 위해 살았다' 하면 잘라 버려야 돼요. 그건 천법에 적용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이것들을 위해 살았다구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면 6천 년 동안 수고할 게 뭐 있어요? 전부 다 없애 버리고 다시 짓지요. 하나님도 자기를 위해서 못 살아 봤는 데 이 죄악의 악당들이 자기를 위해 살아요? 그런 관념은 깨 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하늘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살고, 인류를 위해 살고, 민족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하나님은 나를 위해 살고, 인류는 나를 위해 살고, 삼천만은 나를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내가 살아 준 후에 수많은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살고, 이 민족도 나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도 나 때문에 해방을 받았다,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멋지지요. 그저 전부 다 개인주의적이예요. 오늘 민주주의의 말로가 처량하고, 고독과 더불어 탄식해 가지고 자멸적인 함정을 파는 거예요. 거기에 있어서 쓰러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주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전부 다 조화를 이루어 가지고 하늘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청년들이 공부하게 될 때, 혹은 총각 처녀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뇨? ' 하면, 처녀들은 `시집 잘 가기 위해서…' 한다구요.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됩니다. 총각들은 `내가 잘살기 위해서…' 그럽니다. 그런 것들은 망해 버려야 돼요. 잘사나 보라구요. 망해요, 망해.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이 민족을 위하여, 이 인류를 위하여, 하늘과 땅을 위하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나야 지옥을 천번 만번 가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여 믿어야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은 선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은 하늘과 땅을 위해 믿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천당으로 보내 주기 위해서 믿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나가면 지옥 가는 녀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오, 내 아들딸은 어떻고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소서. 내 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내 남편은 어떠하니 복을 주시옵고, 오, 내 친척은…' 하면서 자기 일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은 신물이 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텐데 그 패들을 붙잡아다가 복 주시겠느냐 말이예요. 기도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구요.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가운데 당신이 피와 땀으로서 찾으시는 무리, 피와 땀을 흘려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려는 위한 무리들이 있사올진대, 하늘이여 원컨대 그들 앞에 당신의 심중에 있던 복을 주시옵소서. 나는 그들의 발에 밟히는 먼지라도 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받을 수 있는 영원의 터를 찾았을 때, 나는 그 발 끝에 묻는 먼지가 되어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아들딸!' 하는 사람의 아들딸을 제일 사랑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예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위대한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삼십평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말구유에서 나 가지고 목수 요셉 가정에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처량한 삼십 평생을 거치면서 혼자 숨은 심정에는 이 민족을 위하는 마음, 남이 모르는 천륜의 비밀의 심정을 품고, 어느 한 날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오고 갈 곳이 없어서 쫓기는 무리가 되어 민족 앞에 몰렸고, 교회한테 몰렸고, 자기 친족한테 몰렸고, 나중에는 제자한테 몰려서 십자가 도상에 나가는 예수 앞에 내가 냉수 한 그릇이나 찬밥이라도 한 술 대접 못 한 것이 원통합니다. 내가 만약에 그때 정한 민족이 되었더라면, 내가 그런 책임을 질 수 있어서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늘에도 그런 뜻의 한 면이 있으시면 그런 것을 내게 보내 주고, 그런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뜻이 있거든 짊어 지워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거예요.

또, 기도할 때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인간을 지어 놓고 영원무궁한 선의 동산에서 자유의 행각을 노래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심중에 사모하면서 창조이상을 실천해 나오시던 그 도상에 있어서 꿈꾸던 그 이념을 실천 못 하고 오늘 타락의 보응으로 이루어진 이 억천만 대 곡절 가운데 혼자 뒤넘이치는 역사가 얼마나 딱하십니까? 그 아버지를 해방시키고, 아버지가 해방되는 날 아버지가 노래하시는 그 얼굴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그 손길을 붙들고 내가 춤을 못 춘다면 울 수 있는 자리에서라도 아버지를 높이, 천년 만년 영원무궁토록 노래하며 모시기에 부족한 마음으로써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런 축복을 주시기에 내가 부족하거든 이 민족 가운데서 빼서라도 주시옵시고, 만일 이 민족 가운데 없거든 나를 그 자리에 세워 주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희생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기도를 그렇게 했습니다. 밥을 먹어도 나를 위해 먹지 않아요. 이래 가지고는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길 나오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이용도 당해 줬어요. 그러나 이용당하다가 두고 보면 이용하던 녀석들이 망해 버렸어요. 하나님을 이용하지 못한다구요. 억울함도 많이 당해 봤어요.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는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을 나는 많이 봤다구요. 갖은 욕설을 다 퍼부어 망하라고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그게 뭐 살 도리가 있지. 그렇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