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배반자와 하늘 1969년 11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1 Search Speeches

심정의 배반자가 되지 말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배반자 가운데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외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의 배반자와 내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의 배반자, 이렇게 두 종류의 배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 세상의 일은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집니다.

대한민국을 보면, 거기에는 행정부서가 있고 그 밑에 조직체, 사업체 등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런 부서의 책임을 진 사람들도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배반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책임자가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배반한 그 사람이 진짜 배반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외적인 상대적 세계에 있어서의 배반자는 이렇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세계에 있어서의 배반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마음속의 배반자라는 것은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심정적 조건이나 생명적인 조건에 의한 배반자입니다. 하늘은 지금가지 어떤 길을 주장해 나왔느냐 하면, 심정적 조건과 생명적 조건을 중심삼고 주장해 나오고 계십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어떤 사람을 위해서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 말 한마디로써 배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질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몇백만 원, 몇천만 원, 몇억 원을 가지고 일하는 데 있어서 몇십만 원을 좌우하는 일 가지고 그 사람을 배반자라고 낙인찍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세계, 생명의 인연에서 그것은 절박한 것입니다. 말한마디가 지금까지 가까왔던 사람과의 인연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쉽게 배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결국 내적인 것이 심각한 정도가 넓고 깊고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종류의 배반자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어느 면에서 배반자가 되지 말아야 하느냐? 심정세계에 있어서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적인 배반자의 낙인이 찍혔더라도, 마음의 세계에서 하나된다면 외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세상적인 배반자의 내용은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심정만 같이한다면 몇백만 원 몇천만 원짜리 사업체 하나 파탄시켰다고 해서 배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같은 입장에서 거지노릇을 하더라도 배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외적인 것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적인 심정을 연결한 참다운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믿는 사람끼리 심정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인격을 추구해 나가다 만일 틀어지는 날에는 영원히 헤어지게 됩니다. 그 이상의 정신적인 내용, 그 이상의 심정적인 내용, 그 이상의 생명적인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해 효자문까지 세워질 정도의 효자라도 그가 부모에게 불경스런 말 한마디를 하면 그럴 수 없는 아들로 알고 있는 부모의 가슴에 영원히 못자국을 남기는 것입니다. `아! 내가 몰랐구나' 하고 천지가 뒤집히는 이상 놀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