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복귀와 축복 1969년 02월 02일, 일본 동경교회 Page #186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원하시" 승리

이전에 50명 가까운 일본 식구 일행이 한국에 와서 부산의 성지를 가봤지요. 거기는 공동묘지의 근처로 돌투성이의 골짜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한 곳에 선생님은 돼지우리와 같은 가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잠을 잘 때도, 이 지상의 어떠한 궁중에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효행을 할 수 있는 제일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깊은 내심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당시에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사람 같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얼굴은 검을 대로 검어 있었고 복장은 동양옷과 서양옷을 섞어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대포보다도 원자폭보다도 그 힘이 더 크다. 너무나 크기 때문에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린다. 선생님은 그러한 환경을 맛보면서 왔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맛을 모를 것이다. 그러한 것을 다 얘기하자면 며칠은 걸린다.

여러분은 아무리 고생을 하고 활동하여 그 환경에서 쫓기더라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십자가에 사라져 가셨지만, 내적으로 하나님의 심정에 불타 있었던 그 기준은 하나님이 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앞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에수님은 4천년 역사상 하나님의 최초의 아들인 것이다. 이 자리에는 3백명 가까이 참석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모두 굳은 결심을 한다면 일본 43개 현(縣)의 문제는 바로 해결될 것이다.

승리란 과정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출발시의 내적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되겠다. 그의 승리가 생사의 경계를 수백 번이나 넘나들며 얻는 것일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결의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 사탄도 따라잡을 수 없는 승리를 원하고 있다.

일본의 현상을 볼 때, 뜻의 선두에서, 대단히 어려운 역경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고생하여 왔지만 그로써 다 되었을 것인가,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일정한 계산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이 역사를 움직이고 역사에 남아진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도 못하였던, 꿈도 꾸지 못하였던 것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상당히 통일교회가 소문이 나 있을 것이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들어가 청춘 시대를 다 소비하고 고생의 길을 거듭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겨우 동경대학에 입학하여 친형제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가서 온 집안이 형편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라면 세계를 무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일본권내에 있어서의 고생은 하나님의 이상권에 들어 갈 수 있는 고생은 아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이상권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목적으로 하니까, 그것을 안 우리들은 보다 큰 가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켰다. 이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출발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반대로 탕감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3인의 제자가 믿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여 12제자, 70문도, 120문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 120문도로부터 쫓기고 70문도로부터 쫓기고 12제자로부터 쫓기고 3인의 제자로부터 쫓기어 십자가까지 지시고 말았다. 우리는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다. 우리는 이것을 먼저 결정하지 않으면, 안타깝지만 복귀의 노정은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섰을 경우에는 박해의 기준을 지나야만 한다. 지금은 민족적인 입장에 서 있다. 이제 국가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각자 자기로부터 3대권 이내에 완전히 복귀시킬 수 있는 결의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째서 3대인가 하면, 그것은 원리적인 수로 사위기대라고 하는 것은 3단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