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집: 하나님을 해방하자 1989년 02월 26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92 Search Speeches

몸과 마음의 통일점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는 그 원인과 결과를 모르고 있다구요. 원인과 결과를 모르고 있지만 원인과 결과에서 떠난 내 자신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자신을 보게 되면 마음이라는 게 있다구요. 마음의 뿌리가 어디예요? 그것은 원인 중의 원인과 통하고 있다 이거예요. 몸의 뿌리가 뭐예요? 몸의 뿌리가 생기게 될 때 마음 뿌리와 달랐겠느냐, 같았겠느냐? 달랐다고 할 때는 그 몸과 마음이 언제 만났어요? 이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뿌리는 같이 시작했다 이겁니다.

그럼 마음이 먼저냐, 몸이 먼저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오늘날 철학에서도 사유와 존재라는 문제를 두고 여기서 많은 피를 흘리고 많은 곡절을 거치면서도 해결 못 하는 거예요. 마음과 몸의 출발기지가 같았느냐, 달랐느냐? 같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가는 길하고 몸이 가는 길이 같았느냐 할 때는 문제가 다르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마음이 가는 길하고 몸이 가는 길이 같다면 우리 마음 속에는 투쟁이 없어야 돼요. 아침에 일어나 24시간 사는 데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1년을 지내고 일생을 거치는 데 있어서에 마음과 몸이 같은 방향으로 가게 돼 있으면 이건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어때요? 화동해 가지고 기쁨으로써 일생 동안 보조를 맞춰 주면서 어화둥둥 좋구나 하며 살아요? 마음이 가는 길, 마음이 바라보는 길 몸이 바라보는 길이 다른 거예요.

그러면 다른데 어느 정도 다르냐? 근본부터 달랐겠느냐? 이게 문제가 된다구요. 근본적으로 달랐다면 하나님이 창조를 잘못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 달라졌느냐? 하나님이 창조한 이후에…. 그러면 인간이 그것을 알았느냐? 모르는 것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 그 몸과 마음의 방향을 그릇되게 할 수 있어요? 모르는 것이 어떻게…. 이런 등등의 어려운 문제가 연결되는 거예요.

몸과 마음이 출발은 같이 했지만 마음은 고상하기를 바라고 몸은 횡적인 것, 넓은 것을 바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적 개념·횡적 개념이 있는 거예요. 높은 것이 없으면, 높은 개념이 없어 가지고는 넓은 개념을 찾을 수 없어요. 넓다 할 때는 벌써 높은 것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좁다 할 때는 낮은 것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마음은 종적으로 가려고 하는 거예요. 마음은 종적으로 맞춰 나가려고 하고 몸은 횡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몸을 가진 인간은 욕심이 무한하다는 거예요. 욕심이 무한한 거와 마찬가지로 마음도 무한해요. 여러분의 마음도 말이예요, 만약에 예를 들어 말하면 4천만 이 국민을 대해 가지고 내 마음이 원해 가지고 한 사람 앞에 1억씩 돈을 주었다, 그걸 다 주고 돌아서고 난 다음에는 아이고 북한도 있는데, 남한만 줄 게 뭐야, 북한 사람도 주고 50억 인류도 다 주면 좋겠다 하는 겁니다. 마음은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무한이예요, 무한. 무한한 마음 기반이예요.

또 우리 몸뚱이도 전부 다 세계를 내 것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안 그래요? 여러분 전부 다 그래요. 아무리 지금 어렵게 살지만 말이예요, 전부 다 내 것 만들고 있는 거예요. 요즘에는 무슨 민주주의니 해 가지고 법을 제정해서 무슨 뭐 300평 이상 못 갖게 하겠다 하는데 그 법을 하나님 앞에 적용할 수 있느냐? 우리 마음 속에 적용할 수 있느냐? 우리 몸의 세계, 욕망에 적용할 수 있느냐? 욕망에 적용 안 돼요. 욕망은 세계를 갖고 싶은 거예요. 안 그래요? 우리 마음은 최고의 높은 것이 있으면 그것까지 올라가서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을 보게 될 때 근본에 있어서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출발을 몸과 마음이 같이 했기 때문에 그 어떤 자리에서 접속하느냐? 접속점이 어디냐? 이걸 찾아야 돼요. 이 접속점이 바로 됐더라면 몸과 마음의 불합리라든가 투쟁이라든가 곡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 접착점이 이루어졌던들, 우리의 마음과 몸은 서로주고 받으면서 우리가 일생행로를 행복하게, 고통이 아니라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갈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을 출발시킨 것이 도대체 뭐냐? 이렇게 볼 때 그건 부모지요. 몸 마음을 어디서 이어받고 태어났느냐?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생명을 주입하는 데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느냐? 부모님의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이렇게 볼 때에 부모님의 생명이 먼저가 아니예요. 부모님의 사랑이 움직여 가지고 부모님들의 마음을 닮고, 부모님의 몸들을 사랑의 힘으로 이어받아 생명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생명을 전수시킨 것은 부모님의 생명 자체가 아니예요. 그것은 무엇을 타고 와 가지고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느냐 하면, 사랑의 배를 타고 와 가지고 만들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