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집: 타락선을 넘자 1965년 10월 2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18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경의 길을 걸-다

이런 역사적인 섭리를 하늘은 해야 되겠기 때문에 맨 처음 그 섭리의 주인으로서 혹은 첫 사람으로서 부름받은 사람이 누구냐? 그건 노아 할아버지입니다. 이 사람이 부름받을 때 하나님이 '야 야, 노아야! 네가 내 말대로 하면 천지가 네 것이 된다'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못 할 것을 시키는 거예요, 못 할 것을. 사탄세계의 백만한 것을 노아를 세워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늘은 이 백만한 것에 해당하는, 하지 못할 반대의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거 해라!' 하고 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탄은 반드시 와서 공격한다는 거예요. 하늘 일을 방해한다는 것이거든요? 노아 할아버지의 일을 방해 한다기 보다도 하늘 일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권 내에 있는 백만한 복이 연결돼 가지고 여기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는 충신과 선을 위주하여 싸워 나가는 터전은 절대 악이 점령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건 천도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명령을 받은 노아는 120년 동안…. 배를 지으려면 강변에다 짓지 산꼭대기에다가 짓느냐 말이예요. 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극반대 현상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백만한 사탄세계의 기준을 하늘세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백만한 반대적인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명령하는 거예요.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체가 이 백의 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의 터를 마련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120년 동안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지어 나오는 가운데 있어서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노아의 부인과 아들딸들은 전부 다 협조했을 것 같지요? 아니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자기 아버지가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 올라가 배를 짓는 다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 아니냐 말이예요.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동네 사람은 물론이요, 그 지방 사람은 물론이요,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전부 다 미쳤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그러니 아들딸, 처자까지도 전부 다 반대했습니다. 반대했지만 하늘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박차고 노아는 끝끝내 120년이라는 기간을 채움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적인 복귀의 전체에 비례될 수 있는, 이 기준을 대신할 수 있는 조건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은 이 인류와의 믿음과….

노아를 중심삼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방해하려고 애쓴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못사는 사람, 잘사는 사람, 혹은 노동자, 농사꾼, 별의별 계급의 사람들이 전부 다 노아 할아버지를 때려잡으려 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꺾여 나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가서는 하늘이 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조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노아 할아버지를 그와 같은 대표적인 입장에 세워서 사탄세계의 모든 사람한테 백 퍼센트 들이 맞게 하고, 그 다음엔 하늘이 선과 악을 갈라놓았으니 선한 것은 세워 줘야 되고 악한 것은 쳐야 된다는 거예요. 탕감복귀예요. 노아의 120년 동안 굳건한 신앙을 중심삼고 하늘의 명령을 따라 세운 그 절개의 터전이 수많은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이 될 수 있었다 이겁니다.

이와 같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사람을 반드시 어디로 보내느냐?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반드시 어디로 데려가느냐 하면, 제일 나쁜 곳으로 데려간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사탄세계의 한 사람도 가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불러내게 될 때, '너 갈데아 우르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가정과 친척을 중심삼고 재미있게 살던 그 환경을 박차고 이방으로 가라 이거예요. 갈데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여기서 저 가나안 복지, 국경을 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되어 가지고 국경을 넘고 넘어 소망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는 황망한 그 길을, 광야노정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아브라함에게는 소망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이거예요. 누구든지 거기에 가라면 싫다고 할 수 있는 이런 길로 내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천명을 따라 가고 가고 또 가 가지고 애급까지 거쳐갔다 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필코 어느 기간을 지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늘이 명령하게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가지 못하는 그런 환경의 터전 위에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그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궁중에 들어가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세 자신이 반드시 역경에 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원치 않는 목자의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 자기 혼자자 광야에 나와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양떼와 같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오는, 그와 같은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하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모세의 생활은 수많은 애급에 사는 사람까지도 동경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자리요, 누구든지 그 사막에 나와서 모세의 편이 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하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을 누구보다도 더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신념과 더불어 실제 생활에서 그것이 표시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그를 세워서 '네가 그럼 이스라엘 민족을 빼앗아 나와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빼앗아 나와라 이거예요. 누구든지 갈 수 없는 곳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뜻을 따라, 명령에 따라 이 일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은 반드시 복귀의 길을 열어 줬습니다.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