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집: 복귀완성 1992년 04월 1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34 Search Speeches

본래 상태로 가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상의 힘을 투입해야

몇 시간 됐지요? 자,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자구요. 복귀 완성은 위해서 태어났으니 영원히 위하는 생애를 직행해 가면 천국의 왕좌(王座)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게 되면 천국의 왕자(王子),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왕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특허품입니다. 그 특허품을 사용하려면 특허비를 지불해야 돼요. (웃음) 정말이라구요. 그러면 기한은 몇 년으로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선생님이 정하는 것 이지, 여러분들은 정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면 긴 것이 좋아요, 짧은 것이 좋아요? 「짧은 것이 좋습니다.」 도둑놈들 같으니라구! (웃음)

그렇게 선생님이 가르쳤는데, 이게 뭐예요? 좀 더 영원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지요. 짧다는 사람은 경계에 붙어 어중간해서 나중에는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짧은 쪽이 좋아요, 긴 쪽이 좋아요? 「긴 쪽이 좋습니다.」 가르쳐 주고 대답하는 것은 영점이나 똑같아요. (웃음) 그렇다구요. 답을 가르쳐 주고 말했으니까 영점이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대답했다면, 영점은 되지 않아요. 오늘 아침에도 3시간 반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7시 반부터 했지요? 7시 반부터 9시면, 1시간 반입니다. 교회 목사가 1시간 반 동안 설교하면 일반 교회에서는 추방당해요. (웃음) 길어도 20분에서 30분이지요. 밤늦게까지 할까요? 「예.」 수업료 냈어요? (박수)

여러분들은 앉아 있어서 땀이 별로 안 나겠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땀이 나요. 넥타이를 했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더우니까. (웃음) 정말이에요. 선생님은 참 건강하다구요. 지금 이렇게 봐도 30대 청년같이 보이지요? (웃음) 그러나 일흔 셋이예요. 일흔 셋이면, 벌써 지팡이로 자신의 묘지를 쭉 둘러 볼 나이라구요. (웃음) 이런 선생님이 일본이라든가 다른 여러 곳을 젊은 사람같이 뛰어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몇 살이에요? (웃음) 잘 모르지요? 하나님이 선생님의 아버지예요, 친구예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딸이 자라면 친구가 되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거 알아요? 그걸 잘 기억해서 자기 아들딸을 그런 식으로 잘 키우라구요. 하나님도 그걸 바라시는 것입니다. 장차 그 아들딸이 훌륭하게 자라 자기의 친구, 혹은 자기의 선생님이 되어 주면 좋겠다 하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양심의 근원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복귀는 탕감복귀입니다. 그냥은 복귀할 수 없습니다. 탕감복귀는 생애의 존재 기준에 역행하는 모든 요소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전통적인 관 념이라든가 고착된 습관성, 배후의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지워버린 입장에 서야 복귀라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탕감 길은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다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투입하는 것입니다. 한번 글을 쓰게 되면 지우는 것은 힘들어요. 쓰지 않은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문자의 흔적이 없이 원래 백지의 상태로 풀려야 하는 것입니다. 깨지지 않고, 열리지 않은 그런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거라구요.

원래 상태로 가려면 평면적인 입장에서는 돌아 갈 수 없습니다. 본연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것을 이룬다는 것은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상의 힘이 투입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창조할 때보다 바르게 된다는 것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탕감의 길은 어려운 것입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만, 이쪽으로 오실 수 없을까요? (어떤 식구)」 (웃음) 그것은 선생님 마음이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웃음) 여기는 책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의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구요. 선생님은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서 있으면 발이 무거워져요. 일주일만 지나면, 계속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거 모를 것입니다. `왜 선생님은 내 가까운 곳으로 오지 않고, 저런 곳에서 말하고 계실까?' 그건 자기를 중심한 생각이지, 선생님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함의 철학 기준에서 보면, 좋은 말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요? 스미마셍(すみません;죄송합니다)이라는 말은 일본 말로 스미마셍(住みません;住む[살다]의 부정 존대어)도 되니까, 죽는다는 뜻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죽고 싶지는 않지요?

자, 탕감복귀를 하는데 있어서 자기라는 관념을 가지게 되면 탕감의 길은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 주장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원수에게까지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적인 정신을 지금 기독교인들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말하는 내용이 그렇지 않다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결국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어디에 간다구요? 「천국에 갑니다.」 정말이에요? 「예!」 그거 믿어요? 「예!」그곳은 결국 어떤 곳이 되느냐면, 천국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