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을 알자 1959년 02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0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자'해야 할 우리

심정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류의 소망의 결실체로 오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과 끊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오셨던 참아버지를 원한의 자리에 몰아놓은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었고, 사탄이 저지른 행사였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그 선조들의 죄를 청산짓고, 사탄을 심판하고 싶은 불타오르는 마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혈육에는 악성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늘이여! 힘을 주시옵소서. 하늘이여 나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함을 칠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랑의 동산이 슬픔의 골고다로 변하다니 이 웬 말입니까?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자랑할 줄만 알았지 하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면서도 예수를 자랑하지 못하고, 하늘을 대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산 제단을 찾기 위하여 허덕였던 예수의 심정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땅에서 찾고자 했던 하나의 사람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민족을 붙들어서 하늘의 뜻을 이루려 했던 심정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우리가 최후에 해야 할 것은 역사적으로 저지른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여 하늘이 그렇게 찾고 있던 하나의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가정과 종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선민이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천민(天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인간의 사정이 아무리 억울하고 어떠한 곡절이 맺혀 있더라도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솟구쳐 올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는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상봉한 바울은 그날부터 예수 앞에 고개를 들수 없는, 즉 면목이 없는 자신인 것을 깨닫고 예수를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겠다는 심정에 사로잡혀 `죽으나 사나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대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독교의 새로운 터전이 여기서부터 닦여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그의 심정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사정과 소원을 자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가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찾고 있던 신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가 찾고 있던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자랑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드러내어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를 자랑하고자 하는 우리들 앞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가로막고, 나를 찢고, 나를 핍박하는 십자가가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며 가는 것이 기독교 신자들이 가는 걸음입니다. 이것은 무한히 슬픈 일입니다.

실체 예수를 자랑해야 되는데 골고다의 십자가를 진 예수를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조건이 인간 앞에 남아진 연고로 그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들은 자랑의 조건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무한히 고통당했다는 이 하나의 자랑의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의 심정이나 예수의 심정을 지닌, 온 만상에 대하여 자랑의 조건을 갖춘 하늘의 아들 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런 세계를 알고 감정의 느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안다할지라도, 실제로 여러분이 활동하는 생활권내에서 자랑의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 19:13)'고 한 것과 같은 그러한 기준을 갖고 나서야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을 수 있고 예수가 우리를 믿을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자랑할 수 있고 예수가 우리를 세워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