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수욕의 상처 1969년 12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6 Search Speeches

우리의 목적지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생각하는 것과 그 목적지의 사정은 다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목적지는 그곳을 향해 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를 향해 갈 때의 내용을 목적지의 내용으로 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과정에서는 다른 새로운 기쁨의 내용을 갖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부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의 본연의 자세를 중심삼은 새로운 생명이 부활되어 나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 가운데 어느 누구의 마음에 그러한 기준이 세워지기 시작했느냐 할 때, 그것의 정도에 따라 세계 30억 인류의 마음에도 그러한 움직임의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면 인류는 절망인 것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중심을 떠난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 하나님은 너무나도 비참한 하나님입니다. 인류의 마음 가운데 머물러야 할 하나님이라면 중심을 떠난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는 머물지 않아야 됩니다. 본연의 그 중심이 세워지기 전에는 우리 가운데 나타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도의 세계에서는 참신한 마음의 본원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인류 전체가 스며들 수 있는 곳이요, 존재세계 전체가 인연을 맺는데 있어서 동기가 될 수 있는 곳이요, 또한 하늘이 이상적인 무대로 삼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인류도 그 자리를 찾고 있지만, 하나님도 역시 그 자리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모르는 가운데에서 그곳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르는 가운데에서 암중모색하실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모르는 가운데서 암중모색하신다면 우리가 그곳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도 그 자리를 암중모색하고 있다 할진대, 우리와 같이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애당초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아는 가운데서 그곳을 향하고 계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 또 그런 사람을 중심삼은 가정,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은 나라, 그러한 나라를 중심삼은 세계는 확정지어져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다시 말하면, 영원히 변할 수 없고, 영원히 상처를 입어서도 안 되고, 영원히 장해와 반대됨이 없는 자유스러운 경지에서 거룩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참된 모습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실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하나님은 혼자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짓는 데에는 사람이 상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비참하시지 않겠느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