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아버님의 슬픔 1972년 08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3 Search Speeches

인간 회복은 부모가 있어서 행복하다" 자각-서부터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만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결과가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더욱 비참한 것이 아니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본래의 인간은 행복할 것인데, 그 행복의 모든 요인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절망과 비운의 자리, 생사의 기로에 서서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보다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이상적인 분이요,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절대자가 느낀 슬픔은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절대자가 아픔을 느꼈던 것은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진정한 효자의 한마디 불효한 말은 불효자의 백 마디 불효의 말보다 더 아픈 것입니다. 그것은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슬픔을 느꼈으면 그 슬픔이라는 것은 언제나 절대자의 마음에 뽑아지지 않는 슬픔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인간이 타락했다면 타락한 그 순간의 아픔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슬픔과 그 아픔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히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 그래요.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되면 말이예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기간이 오래 가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상대적인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져 버리지, 절대적인 관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슬픔이 되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아들 또래들이 크면 클수록, 아들의 친구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친구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들이 잘살면 잘살수록, 훌륭해지면 훌륭해질수록 거기에 비해서 그것이 되살아 나오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사랑의 주체 되는 분은 비참하다, 비참하지 않느냐고 여러분이 결론을 지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내정을 미루어 볼 때도, 그것이 긍정될 수 있는 사실이라면 주체 되는 하나님은 얼마나 슬펐을 것이냐? 그 슬픔의 시간이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순간에 '아담아! 해와야!' 하고 부르던 그 애달픈 마음은 역사시대를 넘어 가지고…. 지금도 애절한 마음으로 부를 것이 아니냐? 그러한 주체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불쌍하다면 불쌍한 반면 우리 인간 앞에는 가장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은 지극히 비참한 것이지만, 그런 자리에 선 부모 앞에 면목이 없는 것이지만, 내 앞에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것이 아니냐. 사랑의 아픈 그 마음을 가지고 천년 만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나를 잃어버린 슬픔을 품고 나오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 안위의 자리를 못 가진 것이 한이지 내일에 대해서 가졌던 소망이 얼마나 크다는 것, 그 내연적인 사실은 사실이 아니냐.

그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불쌍한 나였지만 그런 부모가 있어서 그분이 나를 생각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행복하다' 하는 일념을 자각해 가지고 여기서 다시 돌아서는 데에 있어서 인간 회복운동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너무나 슬퍼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나는 불효했다는 것을 뼛골에, 세포에 사무치도록 절절히 느끼게 될 때는, 불효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부모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이요, 그 부모 앞에 비로소 하나될 수 있는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고는 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