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식구란 어떠한 것인가 1965년 12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 Search Speeches

2차노정을 가실 수 밖- --던 예수님

원래는 예수님이 광야에 나가 시험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됨으로써 예수님은 부득이 40일 동안 금식을 해 가지고, 4천년역사를 탕감복귀하여 그 터전을 다시 닦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40일 금식기간을 통하여서 사탄이 자기 일가에 침범한 모든 원한의 조건을 빼앗아 다시 하나님 앞에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요셉 가정을 세우기까지 수고하셨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담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0일 금식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40일 후에 다시 제 2차 노정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시작된 제2차 노정인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 2차 노정을 걷는 예수님의 심정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요셉 가정으로부터 몰렸고, 자기 친척들로부터 몰렸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안팎으로 일어나서 즉. 요셉 일가를 중심삼고 친척들이 단결하고 그 시대에 명망이 높은 세례 요한을 세워 새시대의 하나님의 섭리의 발판을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다 무너졌기 때문에 정면적인 충돌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먼저 가정적으로 뜻을 이루어 가지고 민족을 대할 것이었는데 거꾸로 민족을 대해 가지고 가정을 찾아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순서로 대해야 될 것이었는데 이것이 깨어졌기 때문에 거꾸로 다시 찾아세워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을 찾아 나서야 했고, 교단을 찾아 나서야 했으며, 민족과 교단 가운데 종족을 편성하고, 가정을 편성하여 부모와 형제의 인연을 다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이 원리를 배우면 잘 알아요.

만일 예수님이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천륜의 뜻을 마련하고, 세례 요한과 일치가 되었더라면, 그 가정과 일가들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당시와 세례 요한은 그 나라 전체가 선생으로 알고 있는 명망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이 국가의 주권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해야 했던 것인데, 세례 요한이 반대의 방향으로 가게됨으로써 예수님은 불쌍한 자리에 서게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정말로 처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의 왕자로 이 땅에 오셨는데 어찌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4천년을 두고 구주를 원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예수님의 제1차 소망이 요셉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밑에서부터 찾아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어부들을 모아가지고 부패한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을 들으면 참으로 화가 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여 가지고 구원을 시켜요? 4천년 역사가 무너졌는데 십자가로 구원을 받아요? 십자가로 죽었으니까 구원받지 그냥 죽었다면 절대 구원 못 받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을 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리가 세워진 거예요. 예수님이 40일을 세워 놓지 못했으면 부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여 40일의 승리기대를 세워 가지고 승천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통일교인들의 손으로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면 통일교회에서는 왜 식구라고 하느냐? 여러분들은 식구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요? 여러분들이 진정 식구입니까? 여러분들이 부르는 식구라는 말은 그렇게 허술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식구라는 명사를 내세웠던고? 거기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