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집: 사랑의 승리자 1977년 10월 01일, 미국 파사데나공관 Page #231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심정적 유대를 맺게 하려면 고생시킬 수밖- -어

여기 미국 같은 사회는 얼마나 좋아요? 얼마나 좋으냐구요. 여기서 여러분들을 반대하고 뭐 매맞고 쫓겨난 일이 있어요? 선생님 자신이 그런 핍박을 받았지요, 선생님 자신이. 전부 다 흡혈귀라고 그랬잖아요? 우리 애들은 점심때에 돈 한 푼이라도 생기면 전부 다 절약해서 선생님을 위해서 뭘 사주려고 하니, 착취한다고 하면서 공산당하고 기성교인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알아요? 그것을 아는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게 빚져서는 안 되겠다' 하며 거국적인 결심을 하게 되었다구요. 그래서 '그 이상 더 하자, 더 하자' 하는 거라구요. 이래서 한국을 표준해 가지고 빚지지 않겠다고 일본 식구들이 결심해서 번 돈을 지금 다 미국에 갖다 씁니다. 한국에 안 가져갔다구요. 세상에 이런 이상한 놀음이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사람에게 져서는 안 되겠다. 일본 사람에게 져서는 안 되겠다' 하며 재기할 수 있는 한 때를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그 사상을…. 내가 이 돈을 한국에 갖다 쓰는 줄 알았어요? 세계를 위해서 쓰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일본이 이런 자극을 받아 가지고 한국한테 빚을 안 지려고 하고, 세계를 도우려고 하는 선생님의 뜻을, 한국 사람들이 선생님의 뜻을 알아서 세계를 도와 주려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제까지는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뜻을 중심삼고 수고한 것을 몰라서 빚을 졌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한국과 일본에 지지 않고 세계를 위해 선두에서 개척하겠다며 피땀을 흘리더라도 감사 할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을 만들어 놔야 되겠다구요.

내가 생각하기에 말이예요, 미국의 통일교회 내에 흑인 지도자가 있으면 백인들이 점심을 안 먹고 그 흑인 지도자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이런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가 '야, 이놈아! 너 어디 가니? 백인 녀석이 흑인 녀석을 먹여 살리느냐?' 하고 매를 때리며 쫓아다니고 말이예요, 이런 문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왜 통일교회 개척자에게, 흑인 책임자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느냐?' 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져야 되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구요. 미국의 청년들에게 통일교회의 스승과 식구들의 관계와 같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생명이 교류되고 심정이 엉키고 피살이 엉킬 수 있는 심정적 유대를 무엇으로 만들어 주느냐? 이게 걱정이라구요. 먹고 입고 자는 이런 것들이 자유스럽지 어려운 곳이 아닌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의 먹을 것을 위해서 내가 돈 한 푼이라도 모아서 언제 자신있게 그 무엇을 준비해 봤으며, 또 선생님의 입을 것을 위해서 한 푼 한 푼씩이라도 일년 동안 모았다가 옷 한벌이라도 사드려야겠다, 그다음에 선생님이 있을 곳이 없을 테니 따뜻한 방 한 칸이라도 내가 만들어 드려야 되겠다, 그런 준비를 해봤어요? 그런 일 없잖아요?

여기서 정신적 유대가 될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구요. 24시간 그저 뜻을 위해서, 그 책임자를 위해서 일하면 있는 정성 다하고, 그 책임자를 안스러워하고 불평을 하지 않는 이 길밖에 없다구요. 자, 그런데 이 책임자들이 24시간 일하고 있어요? 그러한 자극을 주어 가지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24시간 이상 일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교육하고 있느냐 말이예요.

그 길밖에 없다구요. 그 길 외에는 미국 청년들이 심정세계의 은덕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말을 해도 '그게 무슨 말인고?' 하지, 이해가 안 될 거예요. 그거 이해가 돼요? 「예」 뭐 여러분들이 뼈가 울려 나고, 서러워서 그저 눈물이 이러고, 이렇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는 겁니다, 뜻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천대를 받고, 고생을 하면서 가는 길 외에는, 천대받는 책임자와 천대받으면서 같이 가는 길 외에는 심정적 유대를 이을 길이 없다구요. 절대로 없다구요.

자 그러니까 할수없다구요. 내가 그런 전통을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내가 공적 생활에 있어서 이 대중을 대해 가지고, 미국 산하를 누비고 다니기가 한국의 팔도강산보다 더 다녔다구요. 이번에도 일주를 하면서 차를 타고 세 번 네 번이나 왔다갔다 한 것입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어머니가 없으면 뭐 24시간이라도 가겠어요. 맨 처음에 순회할 때는 차간에서 자는 거예요. 운전수가 졸겠으니까 교대를 시키는 이런 놀음을 하면서 다녔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