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집: 기도와 생명 1970년 06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4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인간의 고충

이 타락한 세계를 거쳐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지극히 불쌍한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권을 벗어나려는 입장에 설 때, 미래의 소망을 향해서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나는 모든 환경은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 편이 될 수 없고, 협조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인생 행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편적으로 고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픈 바다요, 외로운 바다요, 처량한 바다요, 무서운 바다입니다. 생사의 모든 판정을 결정하고도 남을 수 있는 위협과 절박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고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해의 길을 가려는 한 사람이 있다 하고 그 사람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고해와 같은 환경에서 배를 타고 출항하는 그의 앞에는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수많은 생명을 삼키던 노도가 가로막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일엽편주와 같은 형상을 지닌 한 개인의 생명체가 있다고 할 때, 그가 가는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길을 알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일을 천번 만번 말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일을 말려 끝이 날 일이냐? 말릴래야 말릴 수도 없는 입장에 선 것이 타락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의 배후에는 그러한 길을 떠나려 하는 사람에게 어서가라고 그가 가는 길을 축복하기 전에 염려의 마음과 걱정의 마음과 지극히 안타까운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타락된 이 세계,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 가운데 사로잡힌 이 천지, 방향도 없고 갈 표준도 없는 인류의 행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르쳐 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지금까지 이 둘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과 서러움과 슬픔과 고충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고충이 얼마나 컸을 것이냐? 여러분의 생애를 다 지내고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여러분의 고충의 한계선 이상의 고충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통과 억울함과 공포가 있었다면 그것 또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공포와 억울함과 슬픔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주체가 누구냐? 그것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인간의 부모로서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방향을 제시하며 명령하게 될 때, 하나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승리할 줄 알고, 기필코 갈 줄 알고 우리에게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이 되었느냐? 이것을 생각해 볼 때, 복귀섭리도상에서 뜻을 알고 따라나온 수많은 의인들은 출발과 더불어 실패의 인연을 거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고통을 느꼈으며, 얼마나 더 외로움을 느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가라고 명령했는데 그 사람이 그 길을 못 갔을 때에는 세 사람을 동원해야 하고, 그 세 사람마저 못 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운명입니다. 한번 하려고 했던 것을 실패하게 되면 또 해야 되고 그래도 실패하면 또다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하늘이 또 명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거쳐 가면 갈수록,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역사시대의 수많은 선지들 앞에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위치에서 절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재차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령을 인간이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이지 인간의 것으로 남아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하기 위해서 또다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이 다리를 놓기 위해 하나님은 개척자의 행로를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