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슬퍼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자 1963년 07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0 Search Speeches

인간의 타락으로 슬""의 -사를 이어 나오신 하나님

이 축복을 비단 인간만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었고, 하늘땅뿐만이 아니라 아버님의 내재적인 심정의 기반 전부를 여기에 가담시켜 놓고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축복대로 이루어졌으면 축복이 이루어진 그 세계, 그 천지는 승리의 영광이 충만한 세계였을 것입니다.

승리의 영광이 충만한 그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은 승리적인 하나님의 심정의 모든 내용을 완비한 표시체로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적인 기반을 꾸며 놓고 싶으셨습니다. 거기에 비로소, 천적인 성업을 인간적인 성업으로서 받아들여 영원무궁토록 행복의 복지를 건설하려 하던 것이 아버지의 요구였고 소원이었습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 있었으나 생각지 아니한 우리 조상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한스러운 일이 일어난 연고로 우리 인류세계에 원망스러운 타락의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복지의 본향을 잃어버리고 고통의 세계에서 살게 되니, 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슬퍼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이 슬퍼하니 지음받은 모든 천지만물도 슬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슬픔과 더불어 인생은 탕감이라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벌이라는 명사의 기준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탕감의 역사를 거듭해 나오는 사망의 세계에서 살아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들을 그냥 둬둘 수 없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연고로 크고 높으신 그 사랑을 가지사, 크신 본연의 뜻을 세우시려고 다시 복귀의 천지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잃은 자식을 찾아오기를 기나긴 피눈물의 6천 년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 길에 있어서 역사의 슬픔은 맺혀졌고, 이 길에 있어서 사망의 결실은 더더욱 터전을 공고히 하게 되었고, 이 길에 있어서 하나님의 곡절과 인간의 곡절은 비로소 맞부딪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망의 노선에서 죽음길을 헤매고 있는 자녀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원수라는 한 적을 앞에 세워 놓고 그 원수의 농락을 당하여 신음하며 사망의 노선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비로소 원수와 대결하여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선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가시밭길에서 고통을 받으면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눈물길에서 허덕이면 이 눈물길을 헤쳐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피 흘리는 길에 서 있다 할진대는 피 흘리는 길을 개척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요, 죽음의 자리에서 신음한다 할진대는 그 죽음의 자리를 개척해야 할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전체를 대하고 있는 하나님이 개체의 사정, 일대일의 사정을 만세계 앞에, 혹은 온 피조세계 앞에 대하는 고통이라는 것은 만만사의 곡절의 내용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헤아려 보게 볼 때, 오늘날 인간세계에 있어서 제아무리 슬픈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슬픔 앞에는 말할 아무런 조건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티끌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의 억울함과 하나님의 분함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망하는 백성이 되어서 주권이 망하는 것을 바라보는 슬픔 보다도, 하나의 자녀를 잃어버리고 부모가 슬퍼하는 것보다도, 또 부모를 잃어버리고 자녀가 슬퍼하는 것보다도, 혹은 사랑하는 부부가 상대를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것보다, 이 땅 위의 슬픈 명사 전체를 합한다 해도 하나님이 슬퍼해 내려왔던 역사적인 슬픔 앞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내 한 개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냐? 이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사 온 존재였다는 것, 슬픔을 주고 사 왔다는 것, 슬픔을 주고 바꿔 왔다는 것, 슬픔을 주고 찾아왔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자리에 세워 준 나라는 것은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사 온 것이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바꿔 온 것이요, 하나님의 슬픔을 주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잊어버리게 될 때는 역사적인 사망의 물결을 밟고 올라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러한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나를 일으켜서 보살피시사 승리의 한 자리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만으로 빚어지는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뒤를 돌아보게 될 때 거기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게 될 때 부모가 있습니다. 또, 좌우를 바라보게 될 때 부부와 자녀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슬픔의 길은 나를 넘어서 나와 관계하고 있는 부모에게, 처자에게, 혹은 이웃 동포와 온 만민 앞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슬픔을 또다시 하나님에게 돌려보낼소냐. 이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겠다' 하는 심정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면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려운 길을 참아 왔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을 표준해 가지고 '내가 이래야만 산다'는 관념을 갖고 참아 왔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아버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참는다. 아버지의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해 참는다'는 이런 일념, 이런 고통 속에서 희생하는 마음이 날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우리의 때가 눈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더욱 간절함을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과 사명을 완결할 때…. 잘 것을 잊어버리고,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사회생활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허덕일 줄 아는 그런 상대적인 모양이라도 취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