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예수의 몸을 붙들고 울어줄 수 있는 자가 되자 1958년 04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3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대하" "른 자세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예수님을 지나간 과거의 인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실의 예수로서 찾아 모시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핍박받으며 돌아다닐 때. 이리 가도 원수요, 저리 가도 원수요, 가면 갈수록 험준한 길이었으며,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길러나온 민족 가운데 기쁘게 맞아주는 친구 한 사람을 갖지 못했던 이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은 지금 느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교단이 기다렸고, 수많은 사람, 수많은 제사장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정작 그가 나타났을때 어느 한 사람 예수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오늘날 여러분들 자신이 2천년 전 예수 당시에 있었다면 과연 여러분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은 사람이 안 되었을 것인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가 과거 역사상에 오셨던 예수요, 현실적인 예수요, 미래적인 예수라 할진대는 과거 재세시(在世時)의 예수의 심정을 알고 그의 심정을 통할 수 있어야 현재의 예수, 미래의 예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가 이 땅에 와서 그저 30여 생애의 슬픈 노정을 지나 십자가에 돌아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여러분은 예수가 이 땅에 와서 그저 죽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2천년 전의 예수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2천년 전의 예수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2천년 전의 예수를 찾아 올라가야 합니다. 즉, 여러분은 2천년 전의 예수의 슬픈 사정과 외로웠던 사정을 알고, 그 2천년 전의 예수와 현실의 내가 간격이 없는 자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붙들고 울 수 있는 내가 되면, 결코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를 죽여놓고 그죽은 예수가 2천년 후의 나를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신앙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10년. 100년. 2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슬픈 예수를 부등켜 안고 울 수 있는 크리스찬들이 과연 이땅 위에 몇명이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돌아가신 예수를 붙들고 하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던 시대가 지나가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환희의 눈물로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살아 계신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 예수를 찾아 세워야 할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중대한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입을 열어 하늘에 계신 예수를 불러 보았습니까? 아무리 불러 봐도 여러분은 그분과 쉽게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만민의 구주요, 그는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구주이기 때문에 나는 그분과 영원한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눈이 과연 예수님을 보았고, 나의 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나의 입이 예수님 대신 말씀을 했는 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예수님과 나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예수를 붙들어야 할 운명의 역사, 비운의 고개를 뚫고 넘어가야 할 이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사적인 예수를 현실적인 예수로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실증할 수 있는 인연을 맺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6천년 동안 역사하신 하나님의 수고의 뜻도 여러분과 인연을 맺어 안식의 한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를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2천년 역사과정의 모든 인류를 대한 섭리의 뜻을 개척하기 위하여 복음을 들고 나섰던 예수, 2천년 동안 그 복음의 말씀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에게 들어가든지 그 말할 수 없는 핍박의 노정을 거치는 것을 보시면서 참아 나오신 이런 역사적인 예수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시에 택한 이스라엘민족 앞에 배척받던 예수의 서글픈 사정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를 과거의 기정사실로 된 예수로 대할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 살아계신 예수로 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활권내에서 예수님의 서글픔을 체휼하고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그를 붙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