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하늘과 땅이 기필코 찾아가야 할 곳 1965년 10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1 Search Speeches

진정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 사람

6천년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무리와 교단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자신의 구원과 안식의 길을 요구하여 나왔지만, 오늘 우리 통일가의 무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 자기의 면목과 체신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이 나라와 세계에 남겨진 가시밭길과 골고다의 길을 개척하는 선봉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감당해야 할 수고의 터전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실 가시밭길을 내가 대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 자기를 통하여 안식의 한 시간, 안식의 하루를 찾아 드리겠다고 하는 무리가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사조와 실증적이 사실로 보더라도 개인주의 사상이 창일한 이 시대에 있어서, 자기를 전체 앞에 희생의 제물로 내세우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또 이와 같은 사회적인 여건에서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단연코 자신이 하나님께서 수고하실 그길을 책임지고 개척하여 오시는 그분 앞에 길잡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분이 입고 오시는 옷에 더러운 흙이 묻을까봐 염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 앞에 걱정거리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짐하면서 오시는 그분의 앞길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잘못이 있을 때에는 ‘아무개야 네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함께 염려해 줄 수 있는 무리를 세계 인류 가운데서 찾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인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돌아볼 때 그러한 경지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가고, 그 본위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중략)

통일신도들에게는 창조이념을 표준으로 하고, 그 방향을 포착하여 지상에서 하나의 승리를 결정지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생을 하려면 충성을 다짐하고, 그 충성의 맹세를 실천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사나이면 사나이, 한 사람의 아낙네면 아낙네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뜻과 목적에 대한 소망이 있고, 땅에 부딪쳐야 할 사정이 있고, 우리와 부자의 인연을 맺어야 할 심정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연결된 노정을 우리가 맡으려면 지금까지 가는 길을 멈출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꺼이 분부하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실 수 있는 여건이 이 시대 역사노정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나에게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고 명령을 자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한 것을 볼 때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은 서로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정이 달랐습니다. 심정적인 기준이 달랐습니다. 때문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하늘땅이 찾아가야 할, 절대적으로 이루어야 할 뜻입니다. 그것을 이루어 드려야 할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역대의 선지자를 통하여, 또한 예수를 통하여 이 땅 위에서 인류로 하여금 이념과 심정과 생활이 일치할 수 있는 자리에서 찾아 이루어야 할 본연의 한 표본으로서 하나님을 시봉하는 도리를 세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막연한 거리를 두고,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 나왔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