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아버지의 목전에서 1970년 03월 14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343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필"로 하" 사람이 되라

우리는 이미 뜻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한 몸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개인을 위하는 자리에서 죽으면 서러운 것입니다. 가정을 위하는 자리에서 죽는 것도 서러운 것입니다. 종족을 위하여 죽는 것도 서러운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는 자리에서 죽는 것도 서러운 것입니다. 이왕 뜻을 위하여 죽을 바에야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 죽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 거리를 축소시키기 위해서 이 세계를 우리의 생활무대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서 온갖 지성을 다 바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개인을 찾지 못한 하나님은 나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찾지 못한 하나님은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요, 종족·민족·국가를 찾지 못한 하나님은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의지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한 가지라도 해냈다 할 때에는 하나님과 나의 인연은 공고해진다는 것입니다.

수난의 길을 슬픔으로 넘을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넘을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목전에서 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내 눈은 누구를 위해서 바라보고 있느냐? 아내를 바라보는 것은 자유로운 세계에서 아내를 바라보기 위해서이고, 자식을 바라보는 것은 해방천국에서 자식을 바라보기 위해서이고,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고 싸우는 것은 내일의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이고, 지금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하는 것은 내일의 행복과 승리로 바꾸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는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 내 일체의 중요한 모든 요건이 아버지를 위해서이어야 합니다. 나는 세계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리에서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몸….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나만 감사해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도 감사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치러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탕감조건 보다 더 가중된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짊어져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치러야 하나님께서 감사해 할 것입니다.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치르고 나면 하나님은 민족 혹은 국가적인 탕감조건을 짊어 지워 줄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감당해 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감사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내게 짊어 지울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모든 문제를 나에게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내세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리를 그리워함은 물론 그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는 그날을 고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에게 세워지는 자리가 크면 클수록 사명도 커지므로 그 큰 범위에 비례하여 슬픔이 오는 것이요, 아울러 탕감도 그 범위에 비례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탕감내용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감사하며 맞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세워져서 칭찬 받는 아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