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축복 1970년 03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3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이유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 때문에 실패하였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30여년 동안 자신이 해야 할 말씀을 다하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예요. 또한 공생애 노정에서 제자들과, 혹은 친척과 해야 할 모든 것을 못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예요. 단지 그 실패의 동기는 예수님이 축복의 자리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시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하고 유대교인이 반대한 데에 있다기보다는 요셉의 가정에서 그러한 축복의 한날을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가졌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귀일된 십자가의 원인과 동기가 무엇이냐? 축복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타락하여 축복의 자리에 미치지 못한 조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비운의 역사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후손들이 신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온 천하의 인류가 하늘 앞에 한결같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축복의 한날입니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내심으로 고대하여 필연적으로 현현하게 되기를 바란 그 축복이, 우리 한국 강토를 중심삼고 통일 제단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문제라는 거예요. 이처럼 세계적인 무대의 여성이 있다면 그 자체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자들이 아니겠어요?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그러한 아들딸이 있겠느냐 할 때, 여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천양지판(天壤之判)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하늘이 허락할 수 있는 축복의 자리에 나설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하고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축복을 해주면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안 해주면, 자기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받겠다고 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은 축복을 안 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축복을 두고 볼 때, 전부다 선생님이 책임지고 축복해 준 일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발전에 있어서도 도움이 못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축복을 안 해줄 수도 없는 내용이 내게는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 축복받은 가정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으로서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