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집: 가정 기반을 중심한 통반격파 활동 1990년 10월 02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358 Search Speeches

어린 시절의 "억

저걸 무슨 매미라고 그러나?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풀매미라고 그러지요? 맴맴 하는 매미는 참매미이고. 저게 울고 그럴 때는 밤이 익고 그래요. 내가 추석 때면 밤을 많이 따러 다녔다구요. 남의 밤밭이나 밤동산이 있거든. 제일 높은 데는 못 따요. 올라가도 장대가 닿지 않고, 더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못 따는 거예요. 맨 꼭대기에는 한 여남은 송이가 언제나 남아 있는 거예요. 그것이 알 중에는 제일 귀하고 말이예요, 참 찰밤이예요. 그건 남겨 놓고 싶어서 남겨 놓는 것이 아니고 못 따니까 남겨 놓는 거예요.

전부 다 따먹고 밤나무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거든. 보면 벌써 싯누렇게 익어 가지고 배꼽이 튀어 가지고 얼굴을 내밀고 `나 누가 모셔 가소' 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뭐 세 알들이 밤, 두 알들이 밤, 한 알들이 밤이 뭉쳐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밤 딸 때 쓰는 팔매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팔매. 팔매가 길면 걸려요. 이걸 매끈하게 망치같이 한 다섯 개 정도 잘 만들어 가지고 말이예요, 망치와 같이 한 곳은 무겁게 매야 걸리더라도 싹 떨어지거든요. 이런 것을 댓 개만 해 가지고 들이치게 되면 하루 동안에 한 망태기 따 넣는 것입니다. (웃으심)

이래 가지고 구워 먹고…. 어머니 아버지는 야단하지요. 매일같이 그 놀음 하니까 말이예요. 그것을 불 때고 난 다음에, 밥 다 한 다음에 부엌에 가게 되면 재가 이렇게 쌓여 있거든요. 밤을 그대로 구우면 배꼽 나 있는 부분이 들이 튄다구요. 그러니 칼로 침을 하나 놓아야 돼요. 째든가 이래 가지고 집어넣어 두면 밥 먹고 다 잠든 다음에 나와 가지고 포켓에 집어넣고 혼자 달을 바라보며 까먹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추석 무렵의 밤에는 자지 않았다구요. 저런 좋은 달을 보러 오지 왜 자느냐 이거예요. 그러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저런 찌르레기도 시골 밤나무골에서 많이 울거든요. 그걸 생각하니까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난 고향이 없잖아요? 이북이니까 고향에 갈 수가 없지요? 임자네들은 고향 가야 될 거 아녜요? 고향 성묘 가야 될 거 아니예요? 안 가는 거예요? 우리 파주 갔다가 와서 성묘 가는 것이 좋을 거라.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