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천국을 찾아 이루려는 슬픈 아버지와 아들 딸 1959년 05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9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깊은 심정과 사정

하늘 배반하기를 일삼고 하늘 대하여 저주하는 데에 선봉에 섰던 자들은 누구였던고? 그들은 믿고 따르라고 세운 유대교인이요, 이스라엘민족이었습니다. 하늘은 예수를 잡아 죽이라고 4천년 동안 준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걸 볼 때 예수님은 온전히 승리하고 가신 분이 아닙니다. 완전한 승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도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완전히 승리한 것이라면 수난의 한날이 그 이상 기쁠 수가 없을 것이며,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그 순간이 최후의 승리의 순간이요 만민 만상을 동원하여 기뻐할 수 있는 순간임에 틀림없을 것인데, 기쁨의 순간이 못되었던 것을 우리들은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환희의 심정으로 맞으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오지 말라고 막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와 더불어 기쁨에 사무쳐 하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걸 못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슬픔을 품은 예수요, 애통해했던 죽음이요, 슬픔을 품고 이루어진 부활이 되었음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슬픈 심정을 체휼하면서 자기의 몸 둘 곳을 모르고, 자기의 생활의 방편도 잊어버리고, 문전 문전마다에서 눈총을 받으며 이 마을 저 마을로 허덕이면서 쫓겨다니던 그 초췌하신 예수님의 동지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민족 앞에 몰렸고, 교단 앞에 몰렸고, 친척 앞에 몰렸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몰렸습니다. 이와 같이 슬픔중의 슬픔을 느끼신 예수님이었지만 하늘의 심정을 품고 세계 인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또한 인류를 믿어 주려는 마음을 지니셨던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픈 감정으로 통할 수 있는 인류를 대한 인연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심중에 품었던 그 간곡한 소원, 간곡한 마음, 간곡한 사정을 인류 앞에 다 알려주고 가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끝날에 있는 성도들은 말씀을 붙들었다는 그것만으로 자기가 하늘의 왕자 앞에 설 수 있는 약속의 신부라고 자처하고 나서지 마십시오.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시여! 저희가 말씀이 두렵고 저희의 행함이 부족하옵니다' 하는 황공한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라 부르기에 눈물이 앞서고, 아버지라 생각하기에 가슴이 막혀 애타는 심정이 동해야 합니다. 자기는 천만 번 제물될지언정 역사를 이끌어 오시기에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자기를 세워 무엇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하늘을 향해 가고 가도 부족하고, 가고 가도 황공하고, 가고 가도 민망한 심정에 사무쳐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자라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경지에 들어가야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또는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마 11:23)"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에 동하여 말씀을 파헤쳐 볼 때 그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말씀으로서 뼈 살에 사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새로운 이념, 새로운 각오, 새로운 결심을 갖고 새로운 목적의 시대를 지향해야 되겠고, 그러한 충격을 지닌 모습으로 주위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신의(信義)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본질세계를 통한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고, 신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찾아준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한편 무엇을 말씀하셨는 가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의의 하나님 등등 하나님의 여러 면을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모든 면을 대표할 수 있는 결론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다'하는 정의를 세워서 우리를 지도하셨습니다. 즉, 참된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