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집: 경주장에 선 현재의 위치 1971년 09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72 Search Speeches

절대적인 기준점- 선 남성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오늘날 어떠한 나라든지 각 나라에는 신화(神話)가 있습니다. 신화는 어떤 것이냐? 막연한 것입니다. 각 나라는 이러한 막연한 역사에서부터 출발하여 문화적인 형태를 갖추고 민족을 형성하여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화의 내용을 모체로 해서 그 나라가 얽혀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화(神話)라는 말을 중심삼고 보면, 신(理)의 화(話)가 생겨나기 전에 신(神) 자체가 있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신화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화를 신앙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신앙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에, 종교는 어떤 신화를 중심삼고 형성된 민족이나 문화의 기원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화가 있기 전에 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이란 어떤 신이냐?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신은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신 가운데 중심적인 신을 통해서 나타난 어떤 신화가 있다면, 그 신화로 말미 암아 엮어질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되고, 세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뚜렷하게 연면히 역사성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비록 악한 세계일지라도 전통적인 방향성에 있어서 현재의 그 입장이 뚜렷하고, 현재에 있어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확고부동하고 뚜렷한 행로가 있다고 할 때에는, 비로소 미래에 어떠한 소망의 길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억천만 사람이 주장했다 하더라도 어떠한 학설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은 변천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 중에도 어떤 종교냐? 종교 중에는 여러 신을 섬기는 종교가 있습니다. 미개한 신앙자일수록, 혹은 미개한 종교일수록 그 대상이 확정지어 있지 않습니다. 아플 때에는 병을 낫게 해 달라는 정성의 대상으로서 신을 모시는 것이요. 출세하기 위한 정성의 대상으로서 신을 모시는데, 이러한 것들은 미신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그 미신 종교에도 그 입장에 있어서는 하나의 진리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에는 비행기로 빨리 갈 수 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지만, 자전거밖에 없던 시대에 있어서는 그것을 타고 가는 것이 최고의 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신 중에서도 어떠한 신이냐? 절대적인 신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신은 무엇을 중심삼고 인간을 찾아와 관계를 맺어야 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적인 신으로서 바라는 소원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세계가 아닙니다. 그 신이 소원하는 대상은 세계도 아니요, 하늘땅도 아닙니다. 그것이기 전에 먼저 무엇이냐 하면 우리 개인이어야 합니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 가운데서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고, 남자들은 남자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신이 대상을 찾아오는 데에는 보다 나은 것을 중점으로 하여 찾아 나올 것입니다. 먼저 대상으로 하는 것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나은 것을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개개인의 마음을 두고 볼 때, 타락되어 있고 악한 세상에 둘러 싸여 있는 우리 자신들도 보다 나은 것을 대상으로 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神)을 중심삼고 볼 때도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여자는 여자가 먼저다 할 것이고 남자는 남자가 먼저다 할 것이지만, 아무리 봐도 여자가 먼저 될 수 없다 하는 것은 여자들도 잘 알 것입니다.

어젯밤에 텔레비젼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여자들이 나와서 축구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후반전에 가서는 조금만 부딪 쳐도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여자들은 저렇게 과격한 운동은 못 하는 것이고, 체력적으로는 남자를 당하지 못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자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남자가 있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도 우선 쓸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것이냐? 데리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 때 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신앙자들은 개인생활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세고 강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며 좋아할 수 있는 온상의 꽃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오는 치열한 전투장에서, 그것을 거슬러 가며 당당하게 전진할 수 있는 용맹한 용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용맹한 용사라 하게 될 때는 여자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필요한 사람은 틀림없이 남자일 것입니다.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종교의 도주들은 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예수도 남자고. 불교의' 석가, 유교의 공자,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도 다 남자입니다. 종교의 도주는 전부 다 남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소망의 대상으로 찾고 있는 것은 세계이기 전에, 나라이기 전에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를 잘못 찾게 되면 나라도 잘못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산꼭대기를 중심삼고 산 밑과 수직선을 그어 90도가 되는 중앙선에 선 남자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90도 근방에 갔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100점을 중심삼고 볼 때, 99.999…를 몇천년 몇억년 계속해도 100점은 못 따라갑니다. 그것보다 100점이 좋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