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우리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1957년 06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6 Search Speeches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전진해야 할 때

이제 인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민족이나 그들의 지도자였던 제사장들 같이 편안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거나, 신앙을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 때는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 홀로 하나님께 단판기도를 하시던 때와 같은 어려운 때입니다. 또, 모세가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대신하여 시내산에 올라가 생명을 걸어놓고 40주야를 간곡히 기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세계를 위해 간곡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끝날에는 이와 같은 사명을 담당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많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진실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모세 때의 12지파와 70장로, 예수님 때의 열두 사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들의 사정을 다 버리고 시내산에서 40주야 금식기도를 하고 있던 모세를 옹위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스라엘민족이 되었던들 그들에게는 광야에서 표류했던 원한의 40년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함께 엎디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도가 있었던들 고난의 2천년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은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조들의 역사적인 이러한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서 세계적인 원한을 종결시켜 하나님이 바라시는 행복의 동산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본향의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러 간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외로운 자리에서 깊은 기도를 하실 때에는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베드로·요한·야고보 등 세 제자에게까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때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조상이 하나님 몰래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을 때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세워 놓아야 할 섭리적인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한날을 바라보며 하나의 관문을 넘어가야 할 말세에 있어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초월한 자리에서 민족과 세계와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도 이하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자기들만을 위해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고, 예수께서 좋은 일을 해도 자기들만을 위해 하는 줄 알았으며, 예수께서 천한 자리에 들어가도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근본적으로 용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끝날에 처한 이때, 영광의 한날을 찾아나가야 할 여러분들은 이제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겠는가?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이것이 세계와 온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발판적인 환경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환경을 만들면 그것이 뭉쳐져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의 생활환경이 형성돼 나갈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현재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것을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반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 하나를 세우고 나 하나의 행복만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신앙의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기쁘실 때에도 하나님을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지니셨는데, 그를 따르는 군중들은 그러한 기쁨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이 지상에서 자기들이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 자기들의 지상명령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염려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그러한 자리에 서면 앞날이 막혀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가신 길은 어떤 길이냐? 방금 말씀했듯이 예수님은 자기를 저버리고 기쁠 때에도 자신의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는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도 예수께서 기뻐하실 때에 기뻐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중심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귀일되는 목적을 세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귀일되는 목적을 세울 줄 아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와 우리는 갈라질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민족이 갈라지고 여호수아와 갈렙으로부터 이스라엘민족이 갈라진 것과 같이 갈라질 것입니다. 또,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과 같이 산양과 면양으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