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뜻과 우리의 생애 1972년 06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8 Search Speeches

뜻의 출발점과 직선이 되도록 방향을 맞춰야 할 신앙자

내가 태어난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게 문제예요. 역사의 흐름을 따라 자기 선조로부터 뜻을 중심삼은 한 길을 남기었는데 내 조상들이 나를 낳아 준 자리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남쪽 끝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동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서쪽 끝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 끝에서, 모든 사람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낳아진 모습은 비슷하지만 가야 할 모습 모습들은 동서 사방으로 엇갈려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라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야 된다, 혹은 이러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본다면 인간들이 서로서로가 가고자 하는 그 방향과 하나님이 뜻을 중심삼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보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뜻은 이렇게 가는데, 이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어떤 사람은 저만큼 가다가 일치되고,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또 출발점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출발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출발하고,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가고자 하는 뜻의 출발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출발점에서부터 어떠한 선을 그어서 갈 것이냐? 그 선과 일치되는 생애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방향과 일치되는 비례에 따라 가지고 그 사람이 선을 중심삼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천태만상의 차이가 벌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공평치 않다고 주장해도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공평치 않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불공평한 자리에 선 입장일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평치 않다고 보는 그 자리가 어떤 때에는 뜻의 방향과 일치되는 공평한 자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행로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로를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그 행로를 바로 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도 그 행로와 일치하기 위해서 보아야 할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야 할 중심점이 어디냐?

그 목적과 직선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 눈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코는 왜 있느냐? 그 직선과 언제나 상대적 관계를 갖고 방향을 잃지 않게끔 선두에서 리드하기 위해 코가 있지 않느냐? 전부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입은 왜 있느냐? 그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영양을 보급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럼 왜 가느냐? 물론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오고 가지만, 그 자체가 그 목적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걸음걸이를 남기기 위해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냐. 이 직선과 관계맺게 하고 그 결과에 일치될 수 있는 점을 가리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이목구비와 사지백체는 생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어야 할 내 자체가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내가 귀중하고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가치한 것으로 떨어져 파탄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하거나 혹은 잠을 자고 깨는 것 전부가 이 하나의 선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별의별 그림이 다 그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를 그래프로 그려 본다고 합시다. 어떤 일을 했느냐? 어떤 때에는 친구하고 만나고, 어떤 때에는 누구와 만나고, 어디서 누구와 싸움을 하고, 이런 것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그야말로 만물상을 그리면서 살 것이 아니냐. 또, 보고 듣는 하루의 모든 느낌과 행동하는 전부가 다른 것이 아니냐? 그것을 종합해 보게 될 때,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 그 방향이 결정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얼마만큼 왔으니, 바른쪽으로 가려면 몇 도의 각도로 왔으니 몇도의 각도로 꺾어 가지고 돌아가야 된다' 하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이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으례히 올바른 방향에 일치된 자리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가고 있다 하는 습관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우리 인간 생활이 아니냐? 그것이 폐단입니다.

나침반과 같이 어느만큼 각도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자연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작용을 하면 모르지만, 작용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내가 고의적으로 그 작용을 해 가지고 방향을 맞추는 일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이 이 세계의 인간 가운데에서 그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자의 생활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