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집: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1987년 05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28 Search Speeches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예수님

이렇게 볼 때에,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그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종족적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요셉가정과 사가랴가정, 세례 요한가정이 하나되어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만약에 요셉가정을 아벨로 해 가지고 사가랴가정과 세례요한가정이 완전히 하나됐다면, 그 가정은 종족적 판도를 기반으로 한 섭리의 터전으로서 자연적으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 두 종족이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에는 그 종족을 중심삼고 모든 씨족들에게 영향 미치는 데도 문제가 되지 않고, 또 외적으로 전개시키는 데 있어서도 반대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종족적 기반, 두 가인 아벨 종족기반이 형성되어서 완전히 하나됐더라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기반과 시대적 사명을 중심삼고 아벨적 입장에서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유대교의 새로운 판도를 형성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례라는 그 식을 중심삼고 새로운 민족 대이동이 형성되어 들어가는 환경이 될 수 있었다 이겁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에, 세례 요한과 요셉가정이 하나됐더라면, 이것은 그냥 그대로 무리 없이 기성 유대교와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요셉의 가정과 하나된 그 가정이 종족적 아벨권이 되어서, 국가적 기반인 유대교권을 아벨적 입장에서 자연히 소화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갔을 것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뭐냐? 세례 요한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례 요한가정이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제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부모의 뜻을 품고 왔다 하더라도, 그 복귀과정에 있어서 실패한 자녀의 기준을 복귀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결혼 전에 타락한 그것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기반을 이루어 놓지 않고서는, 세계로 통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을 이루어 놓지 않고서는 부모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녀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이 하나되고, 그다음에는 요셉가정과 세례 요한 가정이 하나되었더라면 여기서부터 로마를 향해 갈 수 있고, 유대 나라와 유대교가 아벨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가인적인 로마를 소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발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이 와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돌아가는 데는 어떠한 자리에서 돌아갔느냐 이겁니다. 참부모의 자리에 서서 죽어서는 안 될 예수님이 책임수행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자리에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책임을 인계맡아 가지고 대행함으로써 그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이 갈 수 있는 종족적 기반을 재차 편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돌아갔다 이겁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고 종족적 기반을 재편성하면 요셉가정을 대표한 가인 아벨 종족기반을 연결시켜야 할 공식노정의 사명이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간 것이 아들의 자리에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세례 요한이 책임 못 한 것을 복귀하기 위한 과정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영적 관계에 반영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직접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원에 가서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천국이라는 것은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가게 돼 있지 않다구요.

창조원리에 의하면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을 거쳐 가지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대등한 자리에서 몸과 마음이 일치된 그런 아들의 자리에서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완전히 대우주, 창조된 이상세계 전체를 대표한 아들로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로마가 반대하고, 유대 나라가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고, 세례 요한 일파가 반대하는 입장에 선 거예요. 그런 예수님이 책임 수행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늘날 낙원에 머무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자, 이러한 것을 예수님이 감당하고, 이 뜻을 세워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뜻을 못 세우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역사시대에 연장시켜 가지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이냐? 양자입니다. 양자의 종교권을 이어받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끝날에 가서-예수님이 승천하기 전부터 그랬지만-재림한다는 뜻을 남겨 놓고, 끝날에 재림해 가지고 다시 본연의 뜻을 이룰 것을 성경에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이 묵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잔치를 중심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재림시대의 역사적 표적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