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2집: 제38회 참부모의 날 기념예배 말씀 1997년 04월 07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323 Search Speeches

복종은 절대신앙·절대사'을 위해 절대 투입하" 것

그래서 구약성경의 아담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장자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은 장자권 복귀를 위한 것입니다. 창세 이후에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이 갈라졌어요.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 못 된 거예요. 아직까지 하나 못 되었다구요.

예수시대에 가정 기준에서 하나 못 된 그것을 국가 기준에서 하나 만들려고 했습니다. 아벨적 기준이 뭐냐 하면 유대교고 가인적 기준이 이스라엘나라예요.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야 돼요. 주체 대상이라구요. 주체 대상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되느냐? 사랑을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사랑이나 가인의 사랑이나 같아야 돼요. 그러려니까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희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맞고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그를 대신해서 내가 대가를 치루어주는 거예요. 세 번만 대가를 치르면 그 빚을 갚아야 된다는 거예요. 천리 이치가 그렇다구요.

환경 가운데는 주체와 대상이 있으니 이스라엘나라를 중심삼고 주체가 유대교, 교회고 나라가 가인이라구요. 이것이 하나되어야 돼요. 누가 하나되어야 되느냐 하면 제사장이 책임자니까 국가 책임자와 하나되어야 돼요. 이게 국가적으로 메시아가 와서 유대나라와 유대교회가 제사장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도 가인 아벨이라구요. 예수가 아벨이라구요. 제사장들이 가인이 되어서 하나되어야 할 것인데 그 조직적 편성이 안 되었다는 거예요. 재창조 역사라구요. 환경을 만들었으면 거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돼요. 복귀섭리의 환경권 내에 통일교회가 가고 있는데 아벨의 자리가 주체라면 반드시 대상인 가인을 중심삼고 재창조 역사를 해야 돼요. 하나님이 투입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히 투입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무한히 복귀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복귀도 문제없고, 가정복귀도 문제없고, 국가복귀도 문제없고, 무한히 지금까지 계속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나온다는 거예요.

이러므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나오는 거예요.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사랑이 뭐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사랑의 상대자를 찾는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절대사랑을 표준하고 투입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대복종은 자기의 의식구조까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 모든 전부를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 자신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로서의 가치적 내용을 인정 안 합니다. 끝까지 내려가는 거예요. 끝까지 내려가면서 투입하니까 상대는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서 하나님이 서 있는 자리를 넘게 되면 자동적으로 둘 다 살아나는 거예요.

무한한 고기압이 되면 공기가 폭탄같이 압축을 해서 거기에 무엇이든 끼워 넣으면 스루메(するめ;말린 오징어)같이 납작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무한한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주고 주고 잊어버리며 무한히 내려가면서 무한히 줌으로 말미암아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리까지 운동해서 회전운동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파이프 통을 통해서 자꾸 투입해 보라구요. 나중에는 미는 것이 나를 밀어 가지고 추진되는 겁니다. 그래, 고기압이 되게 되면 저기압이 자동적으로 찾아오는 거예요. 자동적 운동권이 생겨나는 거예요. 동네에서도 그렇잖아요. 말없이 끝까지 희생 봉사해 보라구요. 고기압이 되듯이 주었던 것이 찾아오는 거예요. 이장이 찾아오고, 마을의 청년이 찾아오고, 자연히 나한테 편을 드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신앙, 절대사랑을 위해서 절대 투입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자기 의식이 없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자기의 의식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자리를 말하지만 복종은 자기의 의식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 부정의 자리를 지나가야 돼요. 부정의 부정을 지나서 거기에 긍정적 조건만 서면 그 한계선은 거기서 스톱 되는 거예요.

무한 방대한 세계, 무한한 사랑의 세계를 찾아가려면 무한히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늘이 지금까지 나오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수천만 년 참고 나오신 하나님을 존경해야 돼요. 그렇게 참고 무한히 투자해 가지고 무한히 희생하면서 잊어버리면서 또 투입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우리에게 있어서 십 년이 문제가 아니고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생애를 몇 번 뒤바꿔 가지고 부활해서 또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투입하고 잊어버리겠다고 해야 한다구요.

진짜 사랑은, 영원히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은 영원까지 투입하고 또 영원까지 계속하는 것이라구요. 영원히, 영원히 계속하면서 투입하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이런 투입할 수 있는 사상이 있는 곳에 무한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이 있는 거예요. 거기는 이상과 영생의 논리가 생겨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담 해와 앞에 계명을 준 것이 뭐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예요. 남자 자식 가운데 사랑의 대상으로 해와를 지었는데 천사장의 유인을 받을 수 있고 위험천만한 것이니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안 내릴 수 있어요? 내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여자의 정조를 지키라는 거예요. 그것이 자기 것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