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복귀의 한 1971년 02월 19일, 한국 서대문교회 Page #52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길로 내모시" 이유

나를 죽이기 위해 모질게 밟았지만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까지 죽지 않았기에 이곳 서대문 교회에 와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내가 바로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시작하면 사생결단을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세계적 기반을 형성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잘먹고 잘살면서 가자는 거예요, 못먹고 고생하면서 가자는 거예요? 어떤 거예요? 잘먹고 잘살자는 거예요, 못먹고 고생하자는 거예요?「못먹고 고생하자는 겁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요? 누구를 위해서예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녹여내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기성교회에 아무리 수백만, 수억의 신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을 위해서 더 고생하고, 누구보다도 죽음을 각오하며 어려운 것을 책임져 가지고, 하나님을 대변하는 수난길을 자기의 운명길로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백년 천년 만년 끝까지 갈 수있는 운동을 남기는 그런 주의를 이 땅 위에 심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를 몽땅 삼켜 버리고도 남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브레이크를 거는데 거기에 가하여 통일교회 문선생이 또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 퍼센트 브레이크를 거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또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입니다. 악당이나 독재자도 이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동정은 못할망정 브레이크를 또 걸지요? 그렇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고, 힘이 없어 다리가 휘청거려도 '이게 뭐야, 이 녀석아' 하면서 더 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가 자기의 원수요. 자기의 제일 가까운 편이요? 자기편입니다.

선생님은 이북에서 피난 올 때 그런 일을 다 겪었습니다. 뒤에서는 중공군이 따라오는데 데리고 가는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고, 버리고 갈 수없는 사정이 있고. 데리고 가려니 앞길은 막혔습니다. 지나가는 트럭은 전부다 군사물자로 가득하고 길은 이중 삼중으로 막혔습니다. 나보다 큰사람을 데리고 내려 오는데 업고 올 수 없어서 자전거에 태우고 오려니 큰일이었습니다. 가자니 갈 수 없고 죽자니 죽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죽기를 각오하고 갔습니다. 피난민 중에서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나라에 찾아왔던 환란 가운데 제일 고생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빼놓고는 못 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을 먹고 갔습니다. 여기 김전무(김원필)는 눈을 뜬 채로 졸면서 갔습니다. 인민군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지도 모르며 자고 있는 것입니다. 인민군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걸 모르니까 자고 있었겠지요. 그때 한 고개만 넘으면 살 길이 있다면 악착같이 내몰아야 되겠어요, 안 내몰아야 되겠어요? 안 가겠다고 하면 들이쳐야 합니다. 멱살을 잡고 억지로라도 끌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지금 세상은 환란의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목전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때에 악착같은 통일의 무리가 생겨난 것은 세상에서 구경할 만한 장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를 그냥 그대로 두면 악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게 하여 거기에서 한탄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인연맺게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