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현재의 통일식구 1971년 02월 13일, 한국 용산교회 Page #73 Search Speeches

마음이 기뻐할 수 있" 곳을 찾아가" 인간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의 주체는 누구냐, 마음의 주인을 만나 봤느냐 이겁니다. 좋아하는 데는 혼자 좋아할 수 있어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앉아 가지고 히죽히죽 웃고 있으면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하고 몸뚱이하고는 서로 싸웁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몸도 마음이 싫고 마음도 몸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서로 좋아할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싫다는 것이 있는 걸 볼 때에 좋아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좋아할 것이 뭣이냐? 마음의 대상이 뭐냐?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게 되면 끝이 없습니다.

마음의 대상을 만났다고 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기쁨이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아요? 얼마나 큰가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 깊이 잠겨 있는 사랑까지도 딱 잡아넣고야 '헤헤' 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줄 때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진짜 사랑을 나에게 몽땅 주어야 '헤헤' 하고 좋아합니다, 우리 아가씨들, 그렇지요? 세상에 부부들을 보더라도 '당신이 날 진짜 사랑하오? 할 때 그 진짜라는 것은 둘이예요, 하나예요?「하나입니다」 그러니 그 말은 '나 하나밖에 모르지요?' 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마음이, 그 마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터전을 갖고 좋아할 수 있다면, 얼마만큼이나 멋지게 좋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적이겠어요?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다 거기에 녹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그런 주의가 이 땅위에 나오게 된다면 거기에 부딪치는 사람마다 꽃이 피고, 부딪치는 사람마다 향기를 풍기는 봄 절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그래 가지고 살아야 멋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나오게 되면 그렇습니다. 여기가 용산구던가 ? 용산구, 이름은 좋은데 통일교회 방은 조그맣구만. 이 조그만 방에 들어 앉아 가지고 아주 뭐 엄청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나오기 전하고 나온 후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파하면 그저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느라고 바빴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고 와서는 왜 그런지 마음이 '야야 교회 가라. 교회 가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옛날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눈뜨고 밥만 먹으면 학교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학교를 가는 것도 할수없어서…. 그리고 가는 데도 교회를 거쳐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 학생들,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또, 집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다 계시고, 먹을 것 다 있고, 방도 좋고,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컬컬하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기도 싫은 이곳이지만. 그래도 여기 교회에 오게 되면 좋다는 겁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져요, 안 느껴져요?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면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몸뚱이가 느껴요, 마음이 느껴요? 몸뚱이로 말하면 자기 집이 더 편합니다. 집에서는 먹는 것도 좋은 것을 먹지만 여기에서는 깍뚜기밖에 없습니다. 김치도 있다면 형편없는 것이고, 그것도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총각김치 하나 가지고 밥 한 그릇 먹으면서도 이 밥이 맛있다고 싹싹 긁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몸뚱이가 좋아서 그래요, 마음이 좋아서 그래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좋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 마음이 주인을 만나 가지고 마음의 본향을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길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서 구덩이를 파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간다고 할 때, 산골 집을 나오는 그 마음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지금 출발하는 곳은 산골이지만 고향에 간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올바른 것인 줄을 마음이 알기 때문에 마음의 안테나를 중심삼고 전파를 주고받게 되면 무리없이, 상충없이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겁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라구요.

인간에게 있어서 이 위대한 마음이, 엄청난 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나 가지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처녀들이 시집가 가지고 사랑받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 같은 양반은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存)이라고 했습니다. 온 천지간에 나만이 귀한 존재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보니 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 멋지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여자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면 그 여자가 대통령을 대해서 '여보' 하고 부를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지요? '당신이여'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격으로 보면 남편은 대통령이고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 나왔지만 한 가정의 부부로서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보다도 위대한 것이요, 국가를 넘을 수 있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은 인연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식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가치를 두고 볼 때,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대학교의 교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하고 어떤 사람이 더 가치 있느냐 할 때에 학·박사가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농민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생명이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순수한 가치로 보면 농민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는 학·박사가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한 면에 있어서는 농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가치를 중심삼은 사랑은 우주와 통하고 온 천하를 꿰뚫고 넘어갈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마음의 주체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