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인간은 참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 1959년 07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8 Search Speeches

타락인간과 예수

타락의 한을 가진 인류, 타락된 혈통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타락한 선조의 후예인 내 자체요 우리요 인류임을 공인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타락이 무엇이냐? 떨어진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바라는 이념의 요소와 대치되는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 타락입니다.

싫은 것을 피하고 좋은 것, 슬픈 것을 피하고 기쁜 것, 어려운 것을 피하고 행복스러운 것을 바라는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역사와 더불어 엉클어지고 엉클어지고 엉클어져 오늘의 나까지 얽매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한스러운 처지에 있는 나와 여러분에게 참다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제2의 나의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 모습을 불러세워 나를 냉정히 비판해야 할 한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이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하여, 미래의 역사에 대하여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넓게 가져라, 네 마음의 바른 목적인 선을 지향하여라, 본성의 마음에 응할수 있는 몸을 가지는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하여라 하고 권고해 왔습니다.

또 예수는 말하기를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늘의 심정을 통해라, 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라, 그리하면 천국의 중심을 대신한 신랑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은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부딪치게 될 때에 뚜렷한 양심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가 없었음을, 천륜과 천정에 동하여 나는 물론 인간의 모든 심정을 주관할 수 있는 용자가 없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 하였습니다. 천국을 가려면 `먼저 나 예수를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갖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하였습니다. `갖고자 하는 자는 잃어버리고 잃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갖는다' 하였고,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내용을 가지고 오셨던 구주는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마음된 자리에서 있지 못하고, 몸이 몸된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내 심정이 심정된 자리에 서 있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런 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 땅에 와서 양심의 기준을 세워 이 몸, 즉 육신(肉身)을 정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 어느누구 한 사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그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 한스러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천정에 사무친 심정을 통해 마음이 몸을 지배하고 나설 수 있는 확고한 중심을 갖지 못한 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천륜의 심정을 가진 하늘이 있다 할진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여 영원히 하늘의 심정 앞에 둘 것이냐? 이것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하셨습니다. 신부가 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은 인습에 젖은 땅 위의 양심기준도 아니요 시대 변천에 따라 변하는 양심기준도 아닙니다. 땅 위의 인륜 도덕에 화하고 그것을 입증하는 양심기준도 아닙니다. 또 땅 위의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런 신부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랑이라 하는 이 한 분의 용자 앞에 신부의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일 것인가. 신랑의 심정을 사모하고 체휼한 자는 영원한 양심기준을 세울 수 있고, 영원한 몸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방향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는 인류의 참다운 신랑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