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나의 뜻과 신념 1969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7 Search Speeches

배반당하고 몰림받은 지난날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서 찾아 왔다'고 서로 눈짓을 하면서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생님을 맞이했더라면 선생님이 이북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애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어떤 사람을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때도 틀림없이 넌 이렇게 대할 것이다 하고 예상하고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보니까 없어요. 찾아갈 때는 아예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 위하여 오후 늦게 상거지 모습으로 찾아가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해가 진 다음에 저녁밥을 먹고 기다렸는데 늦게서야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동지 앞에서 몰리고 쫓겨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부모 앞에도 몰렸고 민족 앞에도 몰렸습니다. 나는 내 뒤에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난 그 자리에서는 `그동안 염려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그저 도의적인 입장에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내복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에 이불 한 채를 내주면서 어쨌거나 왔으니 덮고 자라고 했지만 그냥 그대로 그 옷을 입고 잤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거기에서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나를 박대하면 그가 7개월 이내에 어떻게 될 것인지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그 집을 기쁜 얼굴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가 기쁜 얼굴 표정을 하고 나왔지만 배후의 하나님은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 역시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며 먼저 동지들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까운 동지로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이북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서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에 2년이 걸렸습니다. 여기 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내 처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았지만 동지들을 모두 찾기 전에는 편지조차 할 수 없는 천적인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서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섰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은 악대로 처리하면서도 그 처량한 신세는 동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천정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나오면서도 이러한 심각한 내용을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부모에게 얘기하지 못 했습니다. 형님 누나 동생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처자한테도, 친척들한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우리 동지들에게도 때가 되기 전에는 이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