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통일신도의 갈 길 1970년 09월 20일, 한국 춘천교회 Page #348 Search Speeches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고 갈릴리 해변가에서는 어부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 죽었느냐, 누구를 위해 피땀 흘렸고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시대에는 민족의 반역자요, 사회의 파괴분자요, 선동분자로 지탄받으며 이슬같이 사라졌던 나사렛 예수가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하여 새로운 세계의 인연을 갖추게 될지 그 누가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필시 이 세상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종말의 시대까지 끌고 오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리워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계를 품고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들딸을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갖은 모욕, 갖은 역사적 고난을 거치면서 죽음길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6천년 동안 찾아 나온 복귀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려고 시도하는 통일교회라 할진대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어떠한 시련 고통도, 천년의 한이라도 우리는 마다할 수 없습니다. 죽더라도 세계를 위해 죽노라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깃발로 말미암아 억천만금의 가치 이상으로 그 나라를 찬양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나라의 주권이 회복됐을 때 우리들은 충신의 반열에 세워질 것이며, 하늘의 중심으로서 천상세계의 황족권에 세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만이 인류가 중심삼고 가야 할 최고의 소망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의 이부자리가 보기에는 비록 처량한 누더기요, 값으로 치면 일원짜리도 못 되어 거지들도 집어 가지 않을 누더기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이것이 변하여 황금이불을 덮고 살아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동안 끊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