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집: 인류의 새로운 장래 1975년 04월 25일, 한국 전주 실내체육관 Page #288 Search Speeches

대상이 자기보다 낫기를 "라" 인간과 하나님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데, 여기 중년 이상 되시는 여러분들이 옛날 젊은 시절에 자기의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그 대답은 누구나 동일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동서양의 그 누구를 대해서 물어도 그런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 그 사랑하는 자식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적인 관계에 있어서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청춘시대에 어떤 남자면 남자가 자기 상대를 취하게 될때에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취하고 싶었느냐, 더 나아가서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취하고 싶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묻는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취하고 싶다하는 대답은 자연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태어날 때, 자기보다 못난 자식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느냐 하면 그런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잘난 자식, 자기보다 훌륭한 자식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청춘시대 때에-여기에 나이 많은 분들이 많이 오셨구만요- 자기 상대를 구할 때 자기보다도 못난 상대를 구하고 싶었어요, 잘난 상대를 구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묻는다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막론하고 '그거야 물어 볼 게 뭐 있어, 누구나 다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원하는것이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하여 첫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애기의 얼굴이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자기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지만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당신의 아기는 당신보다도 얼마나 잘났는지 모를 정도로 훌륭하게 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입이 해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식 잘났다고 칭찬 하는데 '거 아버지와 어머니를 놓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기를 낳았다고 합시다. 그 아이의 얼굴을 부모의 얼굴과 비교하면 제멋대로 생겼지만, 그 아이를 바라보며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도 잘생겼다'고 말하게 될 때, 그 부모는 입이 귀 밑까지 돌아가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박수)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자기의 상대나 자기의 자식이 잘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의 욕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어떠한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 가지고 첫아들을 낳았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는 미남 미녀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의 얼굴은 기와지붕에 열린 호박덩이처럼 제멋대로 생겼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애기를 바라 보면서 '아 당신 아들이 당신보다도 잘생겼소' 하면 그 어머니 아버지는 성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입이 귀밑까지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우리 인간의 본심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여러분들이 부정하려고 해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되어 있느냐? 우리 인간을 두고 보면,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라고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연유를 통한 결과적인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라고 하는 것은 원인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어떠한 곡절의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반드시 원인과 상응할 수 있는 내용과 연결되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때에, 우리 인간도 어떠한 원인을 닮아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원인적인 존재가 누구냐 할 때. 하나님이라고 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누구를 닮아서 이와 같은 요구를 하느냐? 인간은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인은 반드시 하나의 내용을 통해서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자기의 대상이나 자기의 아들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런 요구를 하느냐?

이러한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해서 물어 보자구요. '하나님, 우리 인간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어떻소? 하나님 자신도 상대 될 수 있는 존재가 당신보다도 못나기를 바랍니까?,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하나님 자신보다 못나기를 바랍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하나님이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상대가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아들딸이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대답하겠어요?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원인적인 존재요 너희는 결과적인 존재다. 결과는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결과된 너는 원인된 나를 닮아 태어나서 그와 같이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원인된 나도 너와 같지 않을수 없다'라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원인 되시는 하나님을 닳았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박수)

오늘날 우리는 우리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 이상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보다도 높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해 가지고 인간이 이와 같은 고귀한 가치를 회복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면 오늘 이 저녁에 참석한 여러분의 생애에는 빛나는 미래가 형성되리라고 믿어 마지않는 것입니다. (박수)

이와 같은 물음을 하나님 앞에도 한다면. '하나님. 당신께서는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전능전능하시사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지만, 당신 역시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면 당신보다도 잘난 존재를 원합니까, 못난 존재를 원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겠느냐? 여러분들이 묻지 않아도 같은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거 물을 것이 뭐 있어. 나도 너희들과 같은 대답을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나보다 훌륭한 대상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신학사조였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서 뭘할 거예요? 종을 삼으려고요? 아니예요. 아들딸을 삼는다고 말을 하면 아들딸을 삼아서 뭘할 거예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 세계 만민을 바라서 구원역사 하시는 것은 틀림없는 거라구요. 이것을 볼 때에,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한 가치의 내용을 지녔다 하는 것을 지금까지의 불확실한 신학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간 본연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하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다시 알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신도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당신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느냐고 묻게 된다면. 하나님 역시 '아니야, 나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상의 위치에 서야 할 인간, 아들의 입장에 서야 할 이 인간 자체는 하나님이 자기보다 가치 있고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질문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돌려서 '하나님, 당신도 대상의 존재가 당신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까? 또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랍니까? 하고 반문해 본다면, 하나님도 역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도 너희들과 마찬가지의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거예요. (박수)

오늘날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 대상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길 바래요? 그런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대상일수록 이는 영원이예요, 영원. 영원을 바라는 것입니다. 속세의 인간도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이상도 영원하기를 바라며, 행복과 평화도 영원하기를 바라는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어요? 하나님은 더더우기나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바란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인간은 자기의 가치를 형편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하나야 이거 무가치한 것이다' 동물과 같이 자기를 취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하여서 한 가지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돌아간다면 이는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박수)

이러한 당당한 인간의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에서만이 참다운 사랑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요. 참다운 이상과 참다운 행복과 참다운 평화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자들은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박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사랑을 해서 뭘 하자는 거예요?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이상적 하나님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이상적이면 뭘해요?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요? 혼자서 무슨 평화니 자유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면 절대적이요 유일, 불변, 영원하신 하나님의 대상적인 존재로 군림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것 잠깐 있다가 꺼져라' 이럴 수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영원하니 그 대상적인 존재도 영원이라구요. 하나님이 불변이니 그 대상적인 존재도 불변이예요. 하나님이 절대 유일이니 대상적인 존재도 절대 유일의 가치를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인간은 본연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렇지, 본연의 가치를 지녔더라면 하나님이 높일 수 있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수) 이러한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인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고의 대상이 되든가 최고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욕구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이 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이론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중에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이상, 혹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대상 될 수 있는 존재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일수록 그 존재도 영원하고 불변, 유일,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영원하다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이 된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론적인 결론이다 이거예요. (박수)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들 중에 사랑하는 대상의 존재가 1년이나 혹은 10년쯤 있다가 사라져 바뀌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사랑을 중삼삼고 대상은 영원이예요. 영원, 영원 불변이예요. 보다 차원 높고 절대적이고 유일적인 자리에서 불변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우리 인간들도 그런 것을 요구하는데, 영원하고 불변하며 유일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그 대상의 존재가 잠깐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니 그 대상적인 사랑의 존재인 사람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론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수)

지금까지 인생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죽는, 이슬같이 나타났다가 이슬같이 사라지는 것인 줄 알았더니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깨닫는다면, 그야말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의 길이 시작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니 나도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이 영생하니 나도 영생할 것이다'라는 이런 자주적인 신념을 이제 부터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빛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고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박수)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에는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만, 모두가 오늘 저녁에 한 가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인생은 영원해야만 된다는 결정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박수) 그 정도가 되어야 인생이 만물지중 (萬物地中)에 최귀(最貴)니 하는 그런 말이 성립되지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영원해야 됩니다. 인생은 불변해야 됩니다. 인생은 절대적 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유일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주체이니 그 사랑과 이상과 행복의 대상인 인간도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자, 이제 여러분이 두 가지를 알았어요. '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대등할 수 있다, 야 이것 뭐 인생은 육신생활 잠깐인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이상의 대상으로서 변할 수 없는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 자체도 변할 수 없고, 영생하는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할 수있다'는 사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사실만은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을 줄여서 말씀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 이런 관계가 성립된 이러한 이상권내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으로 여러분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 실현이 가능하고, 사랑의 세계가 가능하며, 또 행복의 세계가 가능하며, 평화의 세계가 가능하며, 참된 자유의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체와 대상적인 관념을 여러분이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 천지창조의 원칙을 따라가게 될 때에, 과연 참된 사랑이니, 참된 이상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것을 어디에 근거점을 두느냐 하는 것을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