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복귀의 기점 1970년 03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8 Search Speeches

스스로를 버리" 길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틀림없는 길이라면, 우리들이 가는 길도 그때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수에게 전부다 빼앗겼다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입장에 서신 것같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환영받으며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탄세계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부정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벨이 가인을 부정하든가 가인이 아벨을 부정하든가 둘 중의 하나는 부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어느 민족에게 환영받더라도 그 민족을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다른 민족에게 가서 환영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와야만 그 민족 그 나라의 백성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이 그냥 그대로 환영을 받는 입장을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영을 안 받았기 때문에, 즉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복귀의 기점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고, 하나님과 같이 설 수 있는 역사적인 복귀의 인연을 이 땅에서 갖출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됐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온 지난날의 역사는 어떠했느냐? 그 자체로 보면 비참한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역사였습니다. 어차피 잃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모든 것을 넘겨 주었듯이 우리들도 모든 것을 넘겨 주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다시 완전히 찾아왔다 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복귀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연의 자세를 중심삼고 복귀해 나가는 것이 복귀의 운명길이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길도 불가피하게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타당한 논리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스스로 버리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버리는 데 누구를 위해서 버려야 하느냐? 이 나라를 찾아야 하므로 이 나라를 위해서 버리자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 자신이 강제로 자기의 생명을 버렸다면 구주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최후의 죽음길을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여기서부터 문제가 달라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스스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 강제적으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희생한 것입니다. 스스로 희생하지 않고 누구에 의해 강제로 희생당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 앞에서 스스로 희생한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희생된 것입니다. 아벨이 희생된 자리는 기쁨으로 희생한 자리가 못 되고 슬픔으로 희생되었기 때문에 복귀문제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강제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혹은 하나님의 섭리권을 벗어난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역시 이런 길을 가는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역사는 방향을 갖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 선한 사람, 아무 이유없이 대중에게 버림을 당하는 사람, 또 권한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아무 대가도 없이 희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떠한 세계에서도 남아집니다. 악한 사탄세계에서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에 있어서도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추구해 볼 때 그것은 스스로를 버리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도 그러한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