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심정의 세계를 창건하자 1967년 12월 29일, 한국 대구교회 Page #77 Search Speeches

천운과 7년노정의 한계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천운과 연결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 종족, 국가, 그리고 세계의 운을 찾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운과 연결시켜 놓으면, 천운은 돌아가기 때문에, 그 돌아가는 운세의 중심점에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중심의 상대적인 입장에서 천운을 타고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개인이 아무리 잘났어도 가정이 파탄되면 그 개인도 역시 파탄의 운세를 탄다. 개인의 운세로 망하는 가정의 운세를 막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가정의 식구가 열 사람이라면 열 사람의 식구와 운세를 개인의 운세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운세로 세계의 운세를 막아낼 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천운 앞에 망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세상에서 말한 운세권내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운세권에서 탈피하여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천운을 통한 국운, 국운을 통한 종족운, 종족운을 통한 가정운, 가정운을 통한 개인운 등 전부 천운을 바탕으로 한 운세을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천운은 무엇을 중심삼고 도느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도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돌고 계시느냐? 당신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과 목적을 중심삼고 돌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운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려면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을 알아야 한다.

개인은 그 자신을 위한 개인이 아니라 천운을 위한 개인이기 때문에 천운을 흠모하면서 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종족, 민족, 국가 천주를 흠모하면서 나가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개인부터 천주까지 연결되는 운세권내에 들어섰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 가더라도 망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7년 동안 활동한 목적은 천운을 타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사탄은 천운을 막는 노릇을 해왔다, 타락으로 인하여 사상은 혼란해지고, 생활은 질서를 잃어버렸고, 또 이 세계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이런 것들을 복귀하기 위하여 역사는 흘러 내려온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이러한 천리의 뜻을 찾기 위해 7년 동안 걸어온 것이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가 발족된 그날부터 세상의 모든 악한 운세는 통일 교회가 가는 길을 사방으로 막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좌절을 하면 안 된다.

악의 운세가 공격을 하면 선의 운세는 수비를 해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비격이었기 때문에 천운을 따라 수비했다. 그 법도에 따라 처음에는 지는 것 같고 나쁜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다. 전도를 나갈 때의 모습은 초라하고 상황은 불리한 것 같지만,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 하늘편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비진을 쳐왔다.

사탄의 공세를 당할 때 사탄이 바라는 기준의 몇배 이상으로 떨어져서도 어느 한계를 넘으면 사탄도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한계를 넘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고 슬퍼하던 그 이상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자리는 사탄도 간섭하지 못한다. 사탄은 지금까지 그 기준 이하에서 인간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공적인 일로 하나님보다 더 슬픈 자리에 들어가면 사탄은 참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진다. 공적인 자리에서 고생을 많이 하면 사탄을 완전히 정복하고 하늘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정한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 느끼신 슬픔 이상의 슬픔을 느꼈고, 또한 그 자리는 인류 최악의 고통을 느끼는 자리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선과 악이 분리된 것이다.

7년노정의 한계선은 그런 기준을 넘는 것이다. 그 기준을 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그 기준을 넘는 사람만이 통일교인이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부여안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몸부림치는데, 거기에 악의 세력이 덤벼든다면 그 자리는 극과 극이 부딪치는 자리로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편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런 원칙이 없다면 고생한 사람들의 말로는 망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