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가야 할 탕감길 1969년 12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1 Search Speeches

충분한 탕감의 대가를 치르자

탕감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제물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물이 역사시대를 벗어나서는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내 생명과 더불어, 내재적인 자아와 실체적인 자아의 뼛골 속에, 골수에 사무치게끔 현실화될 때에 그 제물은 나와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제물이 태어난 역사는 나에게서부터 다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한 것을 제시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역사를 대표해서 귀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선은 여기에 감사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이러한 탕감의 대가를 나 자신부터 치러야 되겠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에서 치러야 되겠고, 부부면 부부에서 치러야 되겠습니다. 부부가 치러야 할 탕감의 내용, 그 길은 어디냐?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겁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을 위해서 고스란히 희생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씨 종족은 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김원필이를 대통령시키려면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원필이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 국민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통일교회는 이것이 다릅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영광의 한날을 차지하겠다고 손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의 한날을 맞기 위해서는 세계의 밑창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의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암에 걸린 그 사람은 그 의사의 무릎 앞에 모든 재산과 권위를 다 털어 놓고 굴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나'라는 생명이 거룩하고 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내가 요동치면 그 여파가 어디에 가서 부딪칠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긴장된 사회가 풀어지고, 좌우의 물결이 격동하다가 자신하여 후퇴하게 되고 고요한 완충지대가 세계 앞에, 후손들 앞에 나타날 때 통일교회는 어떠한 파문을 던질 것이냐? 어떤 바위를 던질 것이냐? 어떤 모래알을 던질 것이냐? 어떠한 사람이 되어 어떠한 가정과 어떠한 종족, 어떠한 민족을 대신할 것이냐? 나는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으로서 거기에 대해서 이러한 파문의 요인을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통일의 남아면 남아로서, 여자면 여자로서의 사는 보람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때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는 역사 전 이상의 자리요, 역사 후 이상의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상에 살지만 지상천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천국은 역사 전에 있었던 것이요, 역사 이후에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가의 탕감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감각을 총합할 수 있는 세포와 신경이 있습니다. 때문에 세포와 신경이 일치될 수 있는 그 순간은 역사를 대신하여 내가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보람된 순간이요, 보람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대가를 치룰 수 있는 보람된 사나이요, 아낙네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에 그 가는 길이 얼마나 엄숙하겠습니까? 숨을 죽이고 가야 하는 그런 길이요, 다칠세라 상할세라 조심스럽게 가야 할 길이며, 거룩한 그 자체로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그러한 길입니다. 그러한 고요하고도 엄숙한 자리에서 꽃과 같이 피어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일시에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