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집: 새로운 가정 1982년 10월 15일, 한국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Page #191 Search Speeches

한국 정부와 통일교회가 하나돼 기독교와 싸운 섭리적 근거

그때 미국에 있는 전기독교가 선생님을 환영했다구요. 전조야가 환영했다구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1974년, 1971년에 가 가지고 1972년, 1973년, 1974년 12월 24일을 중심삼고 한국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미국 기독교 전체로부터 환영받은 내용을 중심삼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한국은 영적 육적 기반이 국가 기준의 한계선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세계적 기독교권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내의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한국 내 기독교가 반대했지만, 세계적 기독교가 그 반대 뒤에 있다는 겁니다, 뒤에.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기독교가 환영을 하면 국가적 기독교가 반대한 걸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적 통일교회 기반과 육적 통일교회 기반 위에 전세계 기독교 기반을 연결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1975년 4월 초하루에 전세계 기동대를 한국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한국과 하나되는 운동을, 외적인 통일 운동을 한 거예요. 전세계 청년들이 와 가지고 한국에서 대회를 한 거예요. 과거 통일교회가 반대받은 입장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IOWC(국제 기동대) 멤버들이 와 가지고 통일교회하고 하나되어 기성교회하고 대립해서 싸웠는데 결국은 통일교회가 승리했다 이겁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게 되면 그때는 박정권에 대해서 기독교가 반발하던 위기일발의 때입니다. 그때 선생님이 기동대를 중심삼고 정부 대신 이 싸움을 맡아 가지고 한 거예요. 맡아 가지고 기독교와 대립한 거예요. 정부하고 통일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기독교하고 붙은 거예요. 기독교가 제아무리 노력해도 끽 ! 부산 1차전, 대구 2차전, 서울 3차전 완전히 패전하고 말았다 이겁니다.

이것이 왜 필요하냐? 예수가 죽게 된 것은 유대 나라하고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를 죽였기 때문이다 이겁니다, 거기에 로마도 따라 들어갔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반대의 입장에서, 오늘날 유대 나라하고 예수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가 죽은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하고 통일교회가 하나된 입장에서 기독교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유대교를 굴복시켜야 돼요. (박수)

다시 말하면 유대교의 자리가 기독교고, 이스라엘 자리가 대한민국이고, 예수님의 자리가 통일교회입니다. 딱 그와 같다구요. 그래 탕감복귀는 반대입니다. 정부하고 통일교회하고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하고 하나되어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 유대교를 굴복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대회를 끝내고 내가 박정희 대통령한테 장문의 편지를, 당신이 나를 만나야 된다고 편지를 쓴 거라구요. 그리고 40일 동안 기다렸어요, 40일 동안. 그래 안 만나 줬기 때문에 나는 미국으로 떠난 겁니다. 그때부터 박정권은 자꾸 내려간 거예요. 몇 년도에 박대통령이 그렇게 되었나? 1979년도지? (통역자에게 말씀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