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집: 최후의 결정 1987년 09월 13일, 한국 본부교회 Page #82 Search Speeches

기독교의 전통사상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그 시대시대마다, 어려운 환경이 있을 적마다 희생하고, 바라던 소망의 천국, 끝날에 와서 하나의 이상적 천국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생명까지 희생하여 그 양을 채워 나왔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양을 넘게 될 때는 가정적 양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늘이 수습한다 이거예요.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모르지만, 개인시대를 넘어 가정시대로 누가 연결시키느냐? 하늘이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영계가 동원해 가지고 '너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그때그때마다 영적인 세계의 지도방침을 통해서 환경을 이어주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걸 이어받는 선각자나 예언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환경적 시대의 입장과 보조가 맞지 않았습니다. 반대적인 현상이 벌어졌어요. 그러니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기독교가 구교인 로마 가톨릭을 중심삼고 나왔지만, 변천하는 시대에 따라 반드시 발전의 폭을 넓혀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가톨릭의 교조적인 기반 밑에서, 전통화된 그 기반 가지고는 세계를 통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로마 가톨릭의 한계적인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그 이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섭리를 하늘은 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 가톨릭 기반 위에 새로운 신교, 프로테스탄트를 나오게 해서 확청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 가지고는 세계를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하나님의 전체적 섭리를 이어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섭리관, 즉 세계사적인 변동시대가 오는 것을 계기로 삼아서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세계를 포괄하려는 것입니다.

기독교회와 통일교회는 그 폭이 다릅니다. 기독교는 자기 개인구원을 표준으로 합니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합니다. 개인주의적인 종교, 기복적인 종교입니다. 그들은 복받기 위해서 믿습니다. 아닙니다. 달라요. 통일교회의 신앙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르다구요. 내가 믿는 것은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그게 전통사상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사상은, 예수가 세계를 위해 십자가를 졌지 당시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진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이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 가운데는 비종교인도 다 들어갑니다. 자국은 물론이요 타국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국 국민이라고 해서 타국 국민 속에 하나님의 뜻을 더 받들 수 있는 국민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의 지도자는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문화권이 형성되어서, 새로운 영향을 미쳐 오는, 새로운 발전의 시대에 대한 포용력이 있어 가지고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방어하고 배제하는 사람은 역사시대의 거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낸 뜻은 유대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아닙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 하게 되면, 그게 무엇이예요? 추상적인 명사입니다. 세상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땅덩어리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사람이 없게 될 때는 대한민국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 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어떤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느냐? 천의와 일치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종교와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