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게 되는 그 과정이 어떠한 것이냐 1965년 02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교회 Page #65 Search Speeches

시련과 고난의 고개

다시 아브라함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사랑하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한번도 가 본 일이 없는 낯선 타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하여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섭리의 중심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만 어떠한 개인을 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택함을 받는 그 개인은 사탄의 참소에서 벗어난 자라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중심되는 개인에게 맨 처음에 요구하는 조건입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의 섭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사탄의 상징적인 땅, 하란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희생의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21년 동안이나 참기 어려운 고역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사탄을 상징하는 하란 땅에서 승리의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하늘 세계의 땅을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70여 명의 가족들은 애급 고역을 위한 또 다른 나그네의 길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종족적인 면에 있어서의 시련입니다.

그들은 4백년 동안이나 애급에서 고난을 겼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역을 겪고 난 터전 위에서만 하나님은 모세의 주도 아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보다 큰 섭리를 추진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련과 고난의 노정은 가면 갈수록 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기대를 수립하기 위하여 더욱 험한 시련과 고난의 고개를 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할 하늘세계가 복귀되는 데 있어서 어찌하여 자신들이 고난의 노정을 걸어야 하는 가 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만일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왜 그래야만 되는 가 하는 이유를 알고 민족적인 기대를 세운 후에 국가적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하여 그와 하나 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인류역사는 판이하게 변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만 영적으로 국가적인, 우주적인 기대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사명을 다하지 못한 연고로 예수 이후 기독교 신자들이 고난과 시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탄의 땅인 로마 제국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영적인 메시아와 더불어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용감하게 고난을 겪어냄으로써 영적으로나마 세계적인 복귀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대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님은 갈보리 산정에서 희생의 제물로 죽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그를 따르던 성도들은 산 예수님과 함께 40년 이내에 로마 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계시되기까지는 천적인 섭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지 않았다면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승리하여 양면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 제국은 세계적인 제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전세계의 중심이었으며 전세계를 상징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산 예수님을 그들의 중심으로 모시고 나갔다면 그들은 로마 제국을 능히 굴복시켰을 것이요, 또 그곳에서 다시 세계적인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여 세계복귀의 뜻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