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본향을 찾아서 1967년 05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3 Search Speeches

우주만상이 '용하" 목적

사람의 마음은 운동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창조원리를 들어서 잘 알겠지만, 주체와 대상이 서로 상대기준이 되어서 잘 주고 잘 받으면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이 생기게 되면 서로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면 번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 혼자서는 절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들어맞았다는 것입니다. 좋아하게 되면 까닭없이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몸을 끌고 다니는 데 '이 사람 아니면 나 죽는 다'는 식으로 죽음을 뛰어넘어 몸을 끌고 다닙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끼리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끼리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동 경기를 할 때에 잘 뛰는 사람은 잘 뛰는 사람끼리 모여서 달리기를 하고, 씨름판에서는 씨름을 잘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그냥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서로 어떠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은 손해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느 누가 손해보기 위해 좋아하겠어요? 장사를 하는 것도 손해 보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손해 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손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가 손해보지 않고 무엇인가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것은 전부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작용입니다.

어느 누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손해보기 위해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의 행동도 자세히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그러겠습니까? 또 동물도 그렇습니다. 동물들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명동에 나가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당신 오늘 얼마나 손해보았소? ' 하고 물어보면 물음을 받는 그 사람은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손해보지 않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기분 나빠할 텐데 실제로 손해를 본 사람에게 '오늘 손해를 봤으니 잘 됐구만'한다면 욕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실제로 손해를 봤다 하더라도 손해봤다고 말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작용하는 근본 목적이 무엇이냐?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전부다 보태가 위해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것은 전부다 이익을 보기 위해서이지 절대로 손해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평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은 평화와 화목, 충(忠) 화(和)인 것입니다. 평등은 수평이라고 말할 수 있는 데 수평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하 관계, 고저 관계에 있던 것이 어떤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고저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높은 곳에서 받아서 낮은 곳에 보태는 작용을 거쳐야만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두고 볼 때 수평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부터 받아야만 수평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차적인 이념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고차적인 정신의 위안처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를 능가할 수 있는 , 고차적인, 세계적인 종교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수평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부터 힘을 보급받아야 됩니다. 자기 자체내에서 보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보급을 해 주는 곳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급을 해주는 곳은 높은 곳입니다. 높으면서도 나쁜 곳이 아니라 높으면서도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만민이 전부 가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곳, 다시 말하면 만민이 이상(理想)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이상은 뭐냐? 잘 먹는 것도 아니요, 잘 자는 것도 아니요, 참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