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불쌍하셨던 예수님 1964년 05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계"야 할 자리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음 가운데에 몰아 넣으면서까지 새로운 한 날을 준비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적인, 민족적인, 국가적인 지도자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구세주를 보내기 위하여 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선지자를 보내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택해 놓은 이스라엘 민족, 야곱을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을 수많은 환난노정을 거치면서도 보호해 나오셨고, 한 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을 끌고 몰면서 나오신 것이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슬픈 자리에 세우기 위해 보내셨겠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으며 어떠한 생활을 했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의 조수로 생활하기 위해 오셨던 분이 아닙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날 분이 아니예요.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길래 오신 메시아를 그토록 천대해야 했느뇨? 그토록 몰라보고 박대해야만 했느뇨?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그토록 처량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했느뇨? 그렇게 하는 것이 4천년 동안 준비하며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그 나라의 왕궁에 모시고 제사장들과 교법사들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교직자들이 자기들 이상의 영광의 자리에서 왕으로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던 메시아가 머물러야 할 자리요. 그것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에게 메시아 탄생을 예고하신 하나님께서 메시아가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서 태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은 다 인간들이 책임 못한 연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만민의 구세주가 되기 위하여는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영광의 자리에까지 터를 닦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법사들을 다스리고 제사장들과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 나라의 군왕을 대신해서 만민에게 명령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요, 이 땅 위에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지고 온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최고의 권위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세계적인 발판을 잡고 악한 세계를 무찌를 수 있는 심판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