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본을 삼자 1970년 08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4 Search Speeches

외적 생활과 내적 생활을 잘 '용하라

그 본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외적인 생활은 단조롭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을 먹고 나서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또 일을 하고,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잡니다. 이렇게 단조롭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기르는 일입니다. 이것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조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조로운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외적인 생활은 단조롭지만 그 외적인 생활의 이면에는 넓고 높고 깊은 복잡다난한 내적인 생활의 일면이 있습니다. 외적인 모든 단조로운 환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밀고 나갈 수 있는 내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틀림없이 그 환경에서 낙망하고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졌다고 해서 그것으로 행복해 하는 부부는 본이 될 수 없는 부부입니다. 외적인 생활이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외적인 생활을 보다 빛내고 보다 행복스러운 것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넓고 깊은 내적인 인연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팎이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면만 가져서는 안 됩니다. 혹은 평면만 가져서도 안 됩니다. 입체적인 내용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 생활을 볼 때 열두 시간 이상 눈을 뜨고 활동합니다. 24시간 중에 여덟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하면 나머지 열여섯 시간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것입니다. 전부 다 외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생활한다면 내적인 것은 무엇으로 보강하느냐? 외적 생활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내적 인연을 무엇으로 보강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단조로운 생활이 습관화되어 가지고,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속된 생활환경을 개척하고, 그 속된 환경에 보다 고차적인 가치의 내용을 부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악한 세상에서 선의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외적인 생활을 지배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적 생활은 단조로왔지만, 내적으로는 민족을 위하고 세계인류를 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한 내적 삶의 가치를 품었고, 그것을 느꼈고, 또 그것을 체험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넓고 깊고 높은 내적인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인류역사에 본이 되어 가지고 자기를 닮아 나오게끔 수천년의 역사를 감화시켜 나온 것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자녀를 대하는 생활과, 아내면 아내로서 남편을 모시고 사는 것은 어떤 생활이냐? 그 생활이라는 것은 일반화된 생활입니다. 모두가 일반화된 코스를 여러분은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입니까? 선이 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의 생활은 본을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더불은 것이고, 그것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가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